느낌, 그 여운/블랙커피

아이보리의 냄새 ivory

가을길 2012. 8. 12. 10:27

 

 

 

유난한 깔끔의 엄마는, 저녁마다 동생과 나를
지금도 그런 통나무가 있을까? 싶은 커다란 목욕통에 넣고 신나게 우리 형제를 빨래 하셨고 우리는 늘 진저리를 쳤다.

그때, 물위에 동동 뜨는 그 하얀 비누의 냄새...

 

통나무 목욕통의 시기가 지난날 읽게 된 소설 -

'그에게서는 비누냄새가 났다...' - 강신재씨 / '젊은 느티나무' ?의 시작부분으로 기억한다.

가물가물한 기억력이라서 아닐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자료 뒤적거리고 싶지 않다.

어느 평론?에 의하면 정말 참신한 표현, 젊은 냄새라고 했던 듯... -

의 첫대목을 읽으면서, '그 비누, 아이보리 냄새였을까?' 하는 싱거운 생각을 했던 것이 생각난다.

 

다이알, 아이보리, 커피, 코티분, 양담배... 그런 '밀수품' 단속 시절이 지나

이제는 취향대로의 냄새와 색깔의 비누가 즐비하고, 나도

그 아이보리 빨래 시절 후로는 무슨 비누를 썼었던지 생각나지 않고, 생각도 안하고 살고 있다.

 

우리 욕실에는 비누가 두 가지, 하나는 딸내미용 - 늘 뚜껑이 닫혀 있어서 무슨 비눈지 모른다.

또 한 개는 옆지기 하고 내 공용 - 역시나 무슨 비누인지 모른다. 그저 살짝 은은하네... 싶은.

샤워 꼭지 밑에는 내 전용 '때비누'. 그러니, 아이보리는 없다.

거 뭐 쪼잔하게 '내비누 아이보리' 따로 해달라기도 그렇고, 100% 잊고 살았다.

 

일욜 아침, 세면대의 비누가 칼날같이 얇아졌길래, 그냥 툭 던지는 말로
"우리, 아이보리 비누 없나?" - 당연히 없을 것으로 생각 하고서.

"치약 뒷자리에 두 갠가 있을 건데, 작년 추석에 들온 거..."

그래, 있네. 빨래비누 같이 네모 반듯한 녀석이 두 개!

참 이상한 것은, 왜 생전 의식하지 않고 지냈던 '아이보리' 생각이 났을까? 글쎄...

일전 올림픽 개막식에 폴 매카트니를 보고서, 잠시 에보니 앤 아이보리  evony & ivory 가

생각나긴 했었지만, 그때도 ivory 비누를 연상하지는 않았는데 말이지.

 

공기 덩어리 같이 가뿐한 무게와 냄새의 아이보리로 세수를 하고
휴일엔 안하는 면도도 일부러 거품내서 해본다.

아하, 바로 이 냄새!

다음에, 동생한테 한 개 줘 봐야겠다. 속알머리가 없어져 가는 녀석도 '어릴적 냄새', 라고 할런지...

 

기웃거리던 옆지기, "그거, 속옷 삶을 때 짤라 넣는 건데..."

오마갓! 이게 무슨 소리냐. "머라카노, 이거를 와 빨래 삶는데 쓴단 말이고?"

"여태까지 늘 그랬는데 뭘 새삼스럽구로..."

어쩌다 선물셋에 딸려 온 아이보리 비누들은 수납장 뒤에 쳐박혀 있다가
무참스럽게 속옷 삶는 대야에서 '빨래찌게용'으로 씌였던 모양이다. ㅉㅉㅉ

"인자부터 이거는 내가 쓸테니까 비눗곽 따로 해도."

 

그래, 당신이 알 턱이 없재, 내 어릴 적 냄새를.

이제부터 욕실에 들어가면 아이보리 냄새가 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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