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 그 여운/블랙커피

갈치 가운뎃 토막

가을길 2012. 8. 9. 21:35

 

 

소금 뿌려 구웠던, 무 넣고 조림을 했던 갈치의 가운뎃 토막은 정말 맛있다.

 

장손이라고 장남이라고 남편이라고 아빠라고...

으례 갈치 가운뎃 도톰한 토막은 내 접시에 놓였었기에 당연, 아니

당연이나 마나, 아예 그런 의식 조차도 없이 그냥 먹었다.

등, 배 지느러미의 잔가시들을 낱낱 발라서 놓아주었다,

할매도엄마도옆지기도.

 

시들시들 하다, 요즘 옆지기.

더위 탓도 있겠지만, 아무리 꼬박꼬박 약을 먹어도

그 갑상선 저하증은 맨날 사람을 추욱 늘어지게 한단다.

 

소나기 지난 거리, 달궈진 아스팔트에 김이 오르는 저녁 퇴근길,

경비아저씨가 택배를 찾아가란다.
갈치, 고등어 자반 셋트 - 옆지기가 홈쇼핑에 주문 했던 갑재.

박스를 들고 들어가니 멀거니 소파에 누워서 간신히 아는 체 하네, 옆지기.

"오케이, 당신 가만히 누웠어. 내가 갈치 구워 주께." - 옆지기는 생선을 무척도 좋아한다.

 

갈치 네 토막 - 가운뎃 쯤으로 보이는 것 두 개, 약간 좁은 껏 두 개 - 를

기름 약간 부어 논 프라이팬에서 노릇노릇 '부서지지 않게' 하라는 원격조정 들으면서 구웠다.

그래, 이왕 하는 것... 싶어, 가운뎃 토막의 지느러미 가시 다 발라내고 옆지기 접시에 얹어줬다.

"이거는 당신 드셔야지이......"

"마 됐다, 당신은 환자 아니가."

피식 웃는 핼쓱한 얼굴이 왈칵 서럽다, 좀...

 

도톰한 살점을 맛나게 먹는 것을 보며, 좀 야윈 토막을 발라 먹어본다.

무언가 몇 % 정도는 부족한 맛이네... 꼬랑지 쪽도 아닌 것이 이런 느낌인데 말이지,

당신들은 맨날 그렇게만 살았구나... 얄팍한 봉급봉투 같은 갈치 꼬랑지를 뜯으며.
그러면서도, 별쪼도 없는 아들, 남편, 아빠랍시고 가운뎃 토막을 줬던갑재.

 

마다하는 것을 억지로 가운뎃 것 하나 마저 먹게했다.  

"아, 맛있네. 당신이 갈치도 잘굽네. 인자 맨날 당신이 꾸버도."

가운뎃 토막 탓인지, 그동안에 조금은 더 핏기 도는 듯한 옆지기 얼굴. - 뭐, 그냥 느낌이겠지만.

부처님 가운뎃 토막은 어디에 쓰이는지 모르지만

갈치 가운뎃 토막은 맛나다, 철 들게 한다.

 

부처님 것 정도는 아니더라도, 나도

남에게 갈치 가운뎃 토막 같은 존재일 수 있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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