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 그 여운/블랙커피

케밥 kebab

가을길 2011. 7. 4. 12:56

엊저녁의 이란공책 때문인지, 전에 썼던 글이 생각난다.

묵은, 창고용 블로그 열어서 정리해 본다.

 

 

요즘은 케밥 kebab 이 다양한 재료와 양념으로 우리 주위에 적잖게 눈에 뜨인다.
심지어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도 간이식으로 만들어서 팔고 있다.
출장길에 들른 휴게소, 케밥 간판이 보이길래 구미가 당겨서 갔더니
차림새 그저 그런 외국인 둘이 케밥을 먹고있다.
파키스탄, 이란, 이라크, 사우디?... - 이 사람들은 겉보기로는 구별이 안된다.
그 콧수염들이 묵묵히 케밥 먹는 것 보자니, 생각나는 사람들!
 
테헤란에서도 한참을 (버스로는 27시간 걸린다) 남쪽으로 내려 간 산골 오지,
거기에서 만났던 이라니언 Iranian들... Mr.H, Mr.K ...

혁명의 찬바람에 날리워, 그 강퍅한 산골에서 사무보조원(영어통역)으로 일하던,
50대 중반의 H는 어느 항구의 세관장이었었다는데, 영어가 아주 유창했었고,
茶를 나르던, 늙수구레 흰머리 가득한 K도 테헤란에서 공직에 있었다고 했다.
한가한 시간에 나누는 잡담에는 가끔, 그네들의 지난 시절 (팔레비 왕정)에 대한 향수 nostalgia.
표현 그대로 '위스키와 바니걸들이 넘치던 거리, 리바이스 청바지의 구리 장식에 광을 내던 시절...'...
하지만, 현실은 냉혹해서, 일반 근로자들 보다도 훨씬 적은 월급으로 - 그나마 이것도 현정부의 배려 -
우울한 날을 이어 가고 있었다.
※ 한편, 原廳 사무실에는 모두, 혁명군이었던 3~40대 청년들이 무게 잡고 있었다.

H 나 K... 그들의 지난 삶이 상류층이었었다는 것은
이따금씩, 그들의 숙소에 들렀을 때 본 고급스런 벨트, 구두, 시계 (사무실에서는 착용 안하던), 
액자에 담긴, 오래전 가족사진 속의 환한 얼굴과 차림들,
혁명후에 몰수 당했다는, 페인팅 잘 된 집... 사진들로 짐작이 갔다.

어느날, 퇴근 무렵, 내 책상옆을 지나던 H가 귓속말을 한다.
저녁 먹지 말고, 7시에, 숙소 밖의 구멍가게(담배, 음료수, 과일... 파는)로 나오라고.
시간 맞춰 가게로 가니, 밖에서 기다리던 H가 뒤켠 대추야자 나무 마당으로 데리고 간다.
흠흠... 허브향과 함께 풍기는 고기굽는 냄새,  !
"쉬시 케밥 shisi kebab !" 을 대접하겠다며 H가 연신 싱글 거린다.
H와 K, 그리고 낯익은 몇몇 사무보조원들...
??? ???
이 동네에서, 양 한 마리면 이사람들 열흘치 봉급이 넘을텐데...?
- 그들의 처지로써는 맥주(non-alcholic) 도, 담배도 넉넉히 살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있었기에...

꼬챙이에 끼워져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양고기를 보며 물어봤다.
"이거 비쌀텐데, 오늘 무슨 좋은 일 있느냐?"
여럿이, 조금씩 추렴했단다.
자기들도 고기가 먹고 싶고, 내가 준 담배가 고마워서, 꼭 나를 불러서 함께 먹자고들 했더란다.
"이라크 때문에 물자공급이 끊겨서, 근 열흘동안 담배를 못피웠었는데,
그때 Mr.리가 준 담배가 고마워서..." 란다. -  근, 한 달 전의 일이다.

그때, 유난스레 빈번한 이라크 전투기의 출몰- 공습은 아니었지만, 그때마다 작업중지, 대피...- 로 항구가 폐쇄되서
식료품 공급이 안되었기에, 한국인, 이란인, 3국인 모두들 아주 어려웠었다.
식당밥도 맨날 밀가루 빵에 날양파, 양고기 국물 스프 뿐. - 한 스무날을 그렇게 지냈었다.
물론, 담배도 있을 턱 없어, 나부터도 몇,며칠을 니코틴 부족에 힘들었었던 어느날,
출근해서 서랍을 여니까, '국산담배 한 보루- 썬 SUN' 가 들어 있다.(마른 오징어 두 마리도 같이...)
- 나중에사 알았지만, 우리 부서장 (아주 독실한 크리스쳔)이 넣어 준 것이었다.
담배 한 곽을 가지고 이란인 사무실로 가서 3개비 씩을 나눠줬었다.

돗수 없는 맥주와, 대추야자, 날양파를 곁들여 먹던 그때의 케밥 kebab은
벌겋게 타던 장작불과, 그 불빛에 어른거리던 얼굴들과 함께 가끔씩 떠오른다.
그 밤, 회식을 마치고 돌아 오면서,
H는 계속 " 쇼마, 헤일리 후베, 헤일리 후베" - 너, 정말 좋은 놈이야.
별 것 아닌 담배였지만 그렇게도 고마움을 표해 주던 그 사람들... - 2005/10/24


세월 많이 갔으니 (25년...), 다들 무고하지는 않겠지...
나도, 벌써 흰 머리 이렇게 무성한 것을, 그때의 K씨 같이......

※ 그 담배와 오징어 - 훗날, 우리 부서장 :
"Mr.리가 담배 없으면 컴퓨터 잘 안된다고 하는 얘기를 전에 들었었는데,
너무 어려워 하는 것 같아서, 한 박스를 구해서 줬지.
내가 담배를 권하는 것이 마음 편하지는 않았지만 ㅎㅎㅎ" - 완죤 감격 먹었었다.
글쎄, 국산담배의 출처가 지금도 궁금하다, 그때 왜 물어보지 못했을까?     
실명을 거론해서 좀 그렇지만 '김영오' 부장님께, 다시 감사를 드린다. 잘계시는지...... 2011/07/04

 

반짝이는 추억이다, 
점심시간이네, 어디 가까운데 케밥집이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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