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전, 옆지기가 뭘 찾으려는지, 컴터 책상 아래 서랍들을 뒤적이길래,
자리 비켜섰더니, 꺼내진 것들 중에 얼핏 아주 퇴색한 표지의 공책이 눈에 띈다.
아하~! 이란에서 쓰던 공책이네... - 세 권 이었던 것 같은데, 두 권뿐.
투명비닐 커버에 500리얄 짜리 이란 지폐가 끼워진 공책 한 권 들고서,
책장에 기대어 첫 장을 열어보니,
Jul 05 - 1986년이니까, 꼭 25년 전이네!
26℃ / 51℃ - 최저, 최고 기온을 기록 한 것,
manpower : 962/1,231 - 인원 한국/이란인
한귀퉁이에 끄적거린 낙서 : - 그날, 뭔가 언짢았었던 모양이다.
'무호동중이작호(한문으로)
소신대로 행동 못하고 가자미 눈 되어가던 자들이 득세함.
근일의 돌아가는 것이 그러함, 불쌍함.'
...
...
7월 부터, 12월 귀국 때 까지, 거의 매일, 매일 기록했던
현장공정들, 간추린 보고서들, 주, 받은 letter들, 사람들 ...
책장에 기대 선 채로 읽어보면서,
시부지기 웃다가, 지금 생각해도 미간 찌푸려지는 일들 생각에 잠시 취했었나보다.
"뭣이 그래 재밌어서 뭘 물어도 대답도 안하요?"
"응?, 머라캤는데?"
"토마토 갈아서 먹을거냐고 물었잖아."
"아무거나,... 그런데, 이란 노트 한 권이 안보이네..."
"이밤에 뭘 끄집어낼라꼬, 생전 안보더니 새삼스럽게... 담에 잘 찾아보라미..."
거기에서의 19개월, 아따 새삼스레 되게 어른거리네.
현장사정도, 통신도, 아주아주 어려웠었던 시절이라서 더 그런 모양이다.
잊고 있었던 얼굴들이 살아난다,
장마전선이 내려온다는 밤. - 2011/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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