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 그 여운/블랙커피

'우셩'을 찾아서

가을길 2016. 4. 24. 22:54




저녁을 먹고 나와, 파릇한 잎사귀의 장미 울타릿길 슬슬 걷는데, 

뭔가 손에 알록달록한 것을 들고서 마주쳐 오는 꼬맹이. 

딴엔 급한 걸음 하다가 손에 든 것을 놓쳐 떨어뜨리고, 어설프게 줍고서 또 뽀르르르... 

뜀박질을 할 정도는 아니고, 이제 걸음이 완성됐네 싶은 나이인데, 그 표정이 어째 좀 편하지가 않다.


한 댓 걸음 지나쳤는대, 뒤에서 울먹이는 소리,  '...우셩아, 우셩아' .

뒤돌아 보니. 꼬맹이는 쓰레기통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는다.

뭔가를 부르던 그 소리가 좀 짠하고 불쌍케 들려서, 소리 나는 쪽으로 갔더니

그 꼬맹이가 어느 불 켜진 이 층 앞에서 '우셩이'를 부르고 있는데, 큰 창문 열린 그 집에서는 아무 기척도 없다.

이제 어둑 어둑한데, 녀석이 아마도 집을 못 찾는 것 아닐까? 싶어

"꼬마야, 누구 찾니?"

"우셩아요." - 울먹임

우셩?, 우셩... 아하, 우리 형이란 말이겠구나. 

"네 형을 찾는 거니?"

"예, 우리 시엉이요."

"놀이터에 가봐, 거기 있는지"

"노이터에 없어요."

"그래, 너 몇 동에 사니?"

"106동요." - 이 대답은 똘똘히 한다. 제 엄마가 단디 갈챴는갑다.

106동은 여기서 대략 7~80미터 저어 쪽인데, 지금 요 꼬맹이는 102동 창밖에서 형을 찾는모양이다.

"106동은, 다시 저기로 나가서, 놀이터 지나고, 끝에 있거등. 놀이터까지 나하고 같이 가자."

밍기적 걸음으로 따라 오면서, 종이접기로 만든 공을 조물락거리며, '셩아 껀데... 뭐라 뭐라' 제법 궁시렁거린다.


어두운 놀이터에는 녀석의 형도, 아무도 없다. 

'이거 천상, 내가 106동 까지 데리고 가야겠네... ' 하는데

"야, 너 어디 갔다 왔어? 엄마도 막 찾았잖아. 내 종이접기 공 어딨어? 빨리 내놔" 

꼬맹이의 형이 어디선가 튀어나왔다. - 꼬맹이 보다 서너 살 위?

형이 학교 숙제로, 종이접기 공을 만들었는데, 꼬맹이가 그걸로 밖에 나가서 공놀이 한다고 들고 튀었더란다.

한 대 줘 박거나, 박히거나 하지 않고 셩아 하고 꼬맹이 둘이서 어둑어둑한 길 잘 가고 있다, 장미 봉오리 불거지는 초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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