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으로시골길도 많이 다녔었다.
지금이야 뭐 전화번호만 갈챠줘도 길잡이 아가씨가
과잉스럽고 친절하게도 (지 고집대로의) 어디 어디로 가라고 갈챠주지만, 그때는
촌길 아무데나 차를 세우고서 경운기 할배, 버스기다리는 할매... 들에게 길을 물어 물어 다녔는데
이거 뭐, 정말로 할매할배들의 오릿길은, 한 십리는 족히 더 가야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조오기 날맹이(고개) 넘어 좀만 가면 금방이여.'
'저 카도(커브)길 돌믄 빤히 보여.'
얼마나 가는 것이 금방이고, 빤히 보이는지는 가봐야 알게 된다.
공장옆 고추농사 하시는 아저씨에게, 내일 해야 하는 담장공사 일 때문에
의논을 해야 하는데 연락처가 없다.
"우리집은 저어기 빨간 기와지붕이야..."
언젠가, 직선거리로 7~800미터쯤 되는 곳의 빤히 보이는 집을 가르쳐 주신 것이 생각나서
해질녘에 그 빨간 기와집으로 찾아갔더니만, 할매만 계시네.
아저씨 가신 곳 물었더니만, "죠기 식당집에 갔는디, 곧 들올 거구만유."
"식당이 어디 있는데요?"
"바로 밑이 (밑의) 동네유. 쫌만 지둘리면 오실거유."
아서라 말어라.
이동네 들오면서 봤지만, 한적한 그 길 어디에도 식당은 없었다.
그러니까, 할매가 '바로 죠오기 밑에... ' 라 함은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먼곳에 있는 것이 분명하고, 또 '좀만 지둘리...'란 말도
그 '곧'이 얼마나가 곧인지 뻔... 하다.
그래 이왕 온 것, 동네 구경이나 하자... 싶어
차를 농로옆에 대놓고 스무 가구 남짓한 한갓진 동네골목의 초가을 저녁을 이십 분 쯤 휘적거리다가
다시, 할매한테 갔더니 역시나 할배는 종내 무소식.
할매 : "곧 오실 거유. 바로 죠오기 갔으니께..."
초가을 해 짧아 대숲 너머로 해가 이울고, 백로들 둥지로 돌아가는 길 따라
그냥 돌아나왔다. 할배, 지금사 오셨을게라...
바쁘지 않은 거리감각, 넉넉한 시간감각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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