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기와집 아저씨네 밭으로 '깻잎' 따러 갔다.
나도, 옆지기도 생전 처음 해보게 되는 것이라서, 토요일 밤부터 옆지기는 좀 설레는 듯.
아니면 언감생심 일요일 아침 6시에 일어나다니...
- 까이꺼, 시장에서 한 만원어치만 사다가 절이면 겨우내 먹거리 되겠지만
그래도, 기분이 그거 아니거등.
- 사실, 그 밭에까지 갔다 오자면 차 기름값이 만 원은 더 든다.
가을 아침, 안갯길을 달려 이슬 가득한 밭머리에 서니,
한물 간 고추들, 나팔꽃 같은 꽃이 핀 고구마, 알 배긴 콩대,
그리고 싸락눈 같은 꽃잎 머금은 들깨... - 한 오 백평 되는 밭.
고구마 줄기도 만져 보고, 콩대도 건드려 보고, 이슬 상쾌함에 진저리 하면서
깨밭에 들어섰는데, 막상 막막하다. 어디에서 부터, 어떤 것을 따얄랑가...
둘이가 다 의욕(욕심)이사 넘쳐서 이따마난 비닐봉지, 천으로 된 시장보따리 하나씩 들었지만서도.
막막하다. 그래, 볶아 먹을 작은잎은 내가, 절임할 좀 큰 잎은 옆지기가 따기로 하고 헤쳐 모여!
이슬에 녹아드는 아랫도리를 느끼면서 깊이 들여마셨다가 길게 내뿜는 담배맛이
참 기가 막히다, 옆지기는 꽁시랑거려 대지만.
문득, 아, 어디 촌에라도 살고 있으면 아침 마다 이런 기분일텐데... 하는,
씨나락 같은 생각을 해본다. - 정작, 농사지으며 살라고 하면 내사 사흘도 못배길 것이란 것도 안다만
그래도 기분은 기분이다.
한 30~40분 지났나? 은근히 진력이 나서
"인자 고마하자, 마이 했다 아이가..." 하는 내말에
순순히 허리 펴는 옆지기를 보니, 그쪽도 단순 반복작업에 좀 진력이 났었던 듯.
두 '보따리' 합치니 제법 불룩하다. 룰루랄라~~~ 들고서 돌아 나오는 밭고랑에
연한 빛으로 콩잎이 물들어 가네... ...
'단풍 콩잎 ! ', 둘이 거의 동시에 뱉는 말이다.
'외할매!'
외할매 가신지도 한참이고, 모친 기력도 전 같지 않아 철따라의 밑반찬 택배가
오지 않게 된지도 두, 서너 해. (물론, 모친의 단풍콩잎은 외할매의 것보다 품질면에서 한참 쳐졌다.)
옆지기는 외할매의 '단풍 콩잎'에 홀딱 빠졌었다. 참 무슨 재주던지, 할매는...
노오랗게 삭힌 콩잎을 꼭꼭 짜서는
젓갈국물, 고추가루, 가는 파, 마늘, 조청 양념을 낱낱에 발라
잘 재운 것을, 고슬고슬 드거운 밥에 걸쳐 먹으면 말이지... ... 밥강도, 밥폭행 이다.
할매 가신 후로는, 어디에 가서도 그런 맛의 콩잎지를 먹어볼 수 없었다.
※ 여기, 대전 (충청도) 쪽에서는 콩잎 (단풍콩잎, 콩잎장아찌, 콩잎김치)를 잘 먹지 않는다.
대전 태생의 매형, 결혼 초기에는 '콩잎은 소가 먹는 것..' 이라며 외로 빼더니만
이내 곧 '콩잎'에 중독이 되어서는 요즘도 더러더러 찾는다.
"당신이 그 비법을 전수 받았어야 하는데 말이지......"
"요새는 옛날같은 멸치젓이 없잖아..."
하긴 그렇다, 요즘 멸치가 어데 멸치 같아야지...
고소한 냄새의 깻잎을 싣고 돌아오는 길, 갑자기 배가 고프다.
해장국 먹고 가기로 의견일치 했는데, 몇 번 갔었던 해장국집이 없어졌네.
모진 세파에 실패했나 보다.
깻잎 볶음 해서 밥 먹으면서, 우리는
콩잎 노오랗게 물들면 그때 또 그밭에 가기로 했다.
그동안 맛난 젓갈을 알아 보아야 한다.
글이랍시고 끄적대다가 담배 한 대 피우러 나가니
서늘한 밤하늘, 반달이 약간 배가 불렀다.
요염한 초생달 요 년, 이슬 맞으며 밤마실 댕기더니 그예 그리됐구나.
곧 만삭 되어 한가위 달 둥두렷 하면, 외할매가 어찌 어찌 단풍콩잎 비법을 알려 줄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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