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 그 여운/블랙커피

수세미 덩굴에 빨래줄 앗기고...

가을길 2011. 8. 30. 10:05

 

 

 

     나팔꽃 덩굴에 두레박줄 뺏기고 얻어마신 물 - 일본, 하이쿠

 

 

 

베란다 왔다갔다 하던 옆지기,
"여보 수세미 때문에 여긴 빨래 못널겠네, 좀 걷어내주소..."

무슨 말이야...? 싶어 나가보니...
오호, 세상에......

고추화분 구석지에서 시들시들, 느릿느릿
도대체가 될성 싶지 않아서
줄 매주기도 안하고 내버려뒀던 녀석이,
암꽃이 분명한 꽃대 3개나 달고서
가슴높이, 작은 빨래건조대를 휘감고 있다!!!

볕 잘드는 쪽에 넓찍히 심은 두 포기는, 
온여름을,신나게 신나게 숫꽃들만 피워대싸서 
'언제나 암꽃 필래나...' 걱정하고 있었는데,
눈치 조차도 안 준 구석지에서
거, 참... 정상발육에 한참 늦은 녀석이,
저래 씨방 달린 줄기 뻗다니...

그동안의 무관심이 미안코, 더욱 반갑다.

 

빨래걸이를 펴자면, 덩굴 잘라서 줄 매줘야 하고...

행여, 꽃피는데 지장 있을까 해서, 
옆지기가 참기로 했다.

행주니, 작은 걸레는 손쉬워서 거기에다 너는 모양인데,
까이꺼, 마 개안타.
물이사, 우리가 좀 얻어마시면 되지.

세상에 났으니, 니도 
손가락만큼이라도 열매는 맺어봐야 안되겠나, 그쟈!

 

        조오기, 달랑 하나 우리의 태양초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