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 그 여운/블랙커피

땅을 물라 칸다

가을길 2013. 12. 17. 11:34

 

 





 

 

영덕 가는 길 2013.12.12 - 폰카

 





 

모친에게는 초등학교, 여학교를 같이 나온, 80년 가까이 된 친구들이 몇 분 계시는데

그 아들, 딸들인 우리들(역시 우리끼리도 친구)은 어릴 적 부터 엄마들을 '이모'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네 평균수명이 보여주듯, 모친을 비롯, 홀로 된 이모들이 많은데, 한 일흔 중반 까지는 이 홀엄니들 서로 왔다리 갔다리 재미나게 지내시더니

언제부턴가 차 타기도 힘들고..., 해서 한자리에 모이는 일은 아주 뜸하고, 전화로만 안부 물으시며입에 군내를 없애신다 캅니다.  

 


지난주, 겸사겸사 모친댁에 갔었었을 때, 청마루에서 울리는 전화를 제가 받았습니다.

역시나, 울산의 어느 '이모'님이 모친에게 안부 전화를 하신 것이었습니다.
나 :    "이모, 잘 계셨지요? 홍입니더."

이모 : "아이구 이노무 손아, 너거가 오늘 거개(거기에) 왠일이고? 엄마는 어떻노?"
나 :   "엄마는 인자 허리도 꾸부러지고 마 그렇심더. 이모는 요새 어떠신교?"

이모 : "나도 인자 땅을 물라 칸다..."

나 :    "예? 머라꼬예?"

이모 : "야야, 나도 인자 허리가 꼬부라져가, 입이 땅을 물라 칸다 아이가." (허리가 굽어져서, 입이 땅을 물려고 한다)

 


푸하하하~ 웃었습니다.

참 기가 막히는 표현입니다. 곱상얇삭하게 생긴 그 이모는 전에부터 입담이 참 재미났었지만

나이 들어 허리가 굽은 것을 '땅을 물라 칸다' 라고 하다니. ㅎㅎ~


 

이모님들 뵌지도 벌써 여러 해가 지났습니다. 모친을 미루어 짐작할 때 그 이모님들 얼굴에도 검버짐이 피었고

야윈 손마디로 마당 가꾸기 하면서, 잎 지면 지는 갑다, 꽃 피면 피는 갑재... 들 하시겠습니다.

우리 국민학교 소풍, 운동회 때, 햇살같이도 곱던 엄마들이 이제는 허리 굽어져 입이 땅을 물려고 합니다.

 


칼바람 세찬 그날 밤, 청마루에서는, 도란 도란 여든 넘은 엄마 곁에서, 어느새 저그들도 환갑이 넘은 딸, 아들들이 홍시를 먹고 있는데  

모친이 지난 봄, 절에 갔다가 얻어 와서 추녀에 달아 놓으셨다는 풍경이 제법 쨍강 거립니다.

 


풍경 먼저 울어, 뒤란 대숲에 바람이 이는지

대숲 지나는 바람에 풍경이 우는지 

풍경이 먼저, 인지

바람이 먼저일까...

거 참, 잠 안오는 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