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는 야그도 없었는데 가을비가 촐촐히 옵니다, 초저녁 부터.
어느 블로그에 댓글을 달았습니다.
... ... 가을비 오는 길, 가을 지나는 길 지켜 홀로 앉은 '모르는 사람'이 암말도 않고 건네는 종이컵의 커피...
답글을 쓰다 문득, 내가 그 모르는 사람이 되고 싶어집니다, 가을을 보내며 섰다가 모르는 사람에게 커피를 건네주는
댓글을 달고서 생각을 해보니, 거 좀 그럴 듯합니다.
누군가가 보낸 가을편지를 은근히 바람할 것 만 아니라 내가
지나가는 뉘에게 가만히 가을 커피를 건네주는 '그사람'이라면!
가을잎 마다에 편지를 써서 '누구라도' 에게 가을 바람결에 보내 봄도 좋지만,
너무 호젓하지만은 않은 숲길, 오래 된 창가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모르는 사람'이 커피를 권하기...
백로, 마음 한가해서 외딴 모래톱에 종일을 홀로 섰는 가을 - 李白 心閒且未去 獨立沙洲傍
서리 반짝이는 잎, 꽃보다 붉네 - 두보, 산행 霜葉紅於二月花
가을강 백로처럼 한가히 가을 길목에 앉았을 때
어깨 한가득 가을, 천천히 걸어 오는 뉘에게 커피를 권한다면
아무런 말이 없어도 되겠습니다, 서로는.
아주 잠시의 끄덕임 뿐일 때
마침 지나가는 바람 있어 잎새 한 장, 우리 어깨에 살짝 내려 앉는다면
아무런 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제 상상은 여기까집니다.
"여보, 내일 저녁에 마트 가야지. 일요일은 안 하니까..."
그래요, 옆지기 말도 잘 들어야지요.
몸뚱이는 그예, 옆지기의 그물에 걸립니다.
왜 너무 호젓하지만은 않은 길이어야 할까요?
모르는 사람도 더러 더러 댕겨야겠지요.
잘 우린 커피가 작은 스피커로 흐르는 가을을
빨간 테두리 창문의 커피집에서
느긋할 수 있었으면 싶어서 입니다.
자아, 가 보입시더!
저어쯤 서글서글한 가을길
누구라도 내가 되어
내가 그 누구라도 되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