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 그 여운/블랙커피

답답함 - 산지기 외딴 집 눈 먼 처녀 보다, 말 못 하는 박과장 보다 더

가을길 2012. 5. 14. 21:46

 

 

종일 봄비에 어디든 작은 물구덩이들 마다 노오란 송홧가루

울고 싶은 어디 산그늘, 꾀꼬리도 이런 날은 금빛 나래 쉼 하겠다

윤삼월, 비오는 그믐께 밤...

 

 

송화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 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 집 눈 먼 처녀사
문설주에 기대어 엿듣고 있다 - 박목월

 

※ 이런 글에도 난 척 評을 하는 무리가 있다. - 숱하다.

    제 느낌은 제 느낌일 뿐이면 되지, 굳이 뭐 무엇이 무엇을 형상화, 시각화 하고 연결해서 눈 먼 처자를 눈 뜨게 하고...
    이런 식으로 굳이 제 뜻을 전달해버려야 하는 과잉친절. 이런 건, 제발 그냥 좀 내버려두면 안될라나? 밥벌이가 안되서 그럴까?

 

그래, 산지기네 다 큰 처자, 눈 먼 저 처자는 그렇다 치고,

언젠가, 농장애자인 박과장 이야기를 썼던 것도 같다. http://blog.daum.net/decent0824/772

늘 선한 웃음의 그 선배....

 

 

오전 내내 전화에, 메시지에 시달리고 쪼들려, 그냥 주저 앉아버리고 싶었던 윤 삼월 어느날,

외주 업체에 출장투입 요청을 했었던 날짜가 다 됐다는 생각이 나서 준비가 다 됐는지 보고 싶어졌다.
둬 번 전화로 약속을 하면서, 꼭 그리 하마는 답도 들었었지만, 그래도 행여 잊었을까 하는 걱정으로.

그래서, 점심시간에 그 회사로 갔다. -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 - 즉, 그만큼 신용없는 인간들이 많(았)...

 

점심시간이라 사람 기척 없는 공장 안, 대충 둘러보니 내일 출장에 필요한 것들의 준비가 안되어 있는 듯.

그래서 짧은 낮잠을 자고 있는 공장장을 깨워서 상황을 물어봤더니, '출장? 뭔 소리여... ?' 하는 표정이다. 
준비사항이 무엇무엇들인지 조차도 전달 받은 것 없단다. 이런 개 문디싴히들...

사장은 인천으로 출장을 갔고, 설계책임자는 오후 늦게사 나올 거란다.

할 수 없지, 또또또또 전화로 조져야지. 사장, 그 설계사... 블라블라블라블라 내 입 아프고 귀 아프고...

밤 새워서라도 준비해서, 내일 절대로 차질 없도록 하겠다는 말만 듣고 털레텔레 돌아가야 되나... 

어설픈 공장 화단, 어설픈 작은 소나무에서 연하게 연하게 송화가루 날리는 것을 보며 허탈케 섰는데
저만치서 커피 담긴 종이컵 두 개를 들고 세상 모르는 듯 웃으면서 박과장이 온다.

순간 스치는 생각!

'당신이 지금, 제일 행복한 사람이네...'

부러웠다, 정말 부러웠다.
당신은, 아니, 당신 속의 그 고요함은 어떤 세상일까... 느끼고 싶었다.

전화도, 엔진 소리도, 쑥덕임도, 앞, 뒷담화도 들리지 않는 세상은 어떨까...

 

잘 지냈냐고, 건강하냐고, 출장준비 덜 되어 있어서 지금 좀 성질 났다고

서툰 수화로 이야기 하고, 커피를 마시고 '안녕~' 했다.

늘 고요함 속에 사는 그사람은 또 그런 웃음으로 잘 가라고 손짓을 해주었다.

 

산지기네 처자는 송화가루를 보지 못하고

저 양반은 꾀꼬리 소리를 듣지 못하지만

나는 봄 마다 송화가루 날리는 것도 보고

금빛 날개 꾀꼬리 소리도 가끔 듣는다.

그래도,

그래도

답답할 때가 많다, 당신들
저 처자 보다,

저 박과장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