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 그 여운/블랙커피

난 굶어도 싸다...

가을길 2012. 3. 26. 22:19

 

 

아파트 마당에 양파, 감자 트럭의 빛이 좋길래 한 망씩 사들고 들오면서
"닭도리탕 얼큰하게 해도."

"닭 없는데 지금..."
"그럼 다음에 하지 머, 그쟈." - 지난 토욜 오전.

 

오늘, 전화.
"당신, 오후에 시내 나간다며, 들올 때 닭하고 당근 좀 사오소."

"당근하고 닭, 오케이~~~"
"당근 깨끗한 거는 중국산이니까 절대 사지 마소..."

닭은, 재미나게 씨불거리면서 그때그때, 바로 바로 토막 잘 쳐주는 그 정육점에 가사 사면 된다.

 

오후, 일 마치고 가뿐한 걸음으로 닭, 당근, 닭, 당근... 룰루랄라
훈훈한 날씨에 올만에 카메라도 메고 복작거리는 시장통!
목이 아파 말 잘 못하는 호박고구마장수 할매와 귀 어두운 할매 거들어 동시 통역으로
흥정도 이루어 주고, 사탕아지매 한테 유과도 한 봉지사고, 구운 가래떡 우적거리면서도
가끔 나를 다그친다. - 요즘, 하도, 잊어버리는 것이 많아져서.

'닭 하고 당근, 닭,당근...' 하지만, 야들은 장구경 다하고 집에 갈때 사야 거추장스럽지 않지...

'닭하고당근당근하고닭닭당근당근닭... 그저께 양파가 아주 실하던데 이번 닭도리탕도 흠...'

기웃기웃 이리저리 사람속에 묻혀 댕기다 보니 다리도 좀 피곤하고 시간이 벌써 5시,

오케이~ 아까 눈맞춤 해둔 곳의 당근 부터!

 

까만 흙이 묻은 당근, 아마도 제주도에서 온? - 오래전 제주도 출장가서 당근밭 본 기억...
"이거 국산 맞지요? 닭도리탕 할 건데..."
"맞아유, 달아유, 닭도리탕에 양파 , 감자 하고 같이 넣으면 좋쥬, 양파도 드리께유..."
근데, 내가 미쳤제... 순간, 최면에 걸린 거야.
'오, 잘됐네. 여기서 그냥 두 가지 다 사가지고 가면 되겠네...'
당근, 양파 한 바구니씩 검은 비닐봉지에 하나에 담아 들고 '양파당근, 당근 양파...' 오케이, 미션 완수!
꽃가게에서 로즈마리 화분도 두 개 샀다.수시로 뜯어서 료리에 넣으려고...

 

"자아, 당근 하고 양파!"
"닭은?"
"? 띠잉..."
"양파는 그저께 샀잖아..."
순간, 아 ! 고노무 당근쟁이 ...
그녀석이 닭도리탕 들먹이는 바람에 내가 헤까닥 해버렸구나.

두 가지는 두 가진데, 양파 하고 당근, 당근 하고 양파... 양파 하고 닭,  당근하고 닭...

 

꿀꺽, 침 한 번 삼키고 옷 갈아 입으로 안방으로 들어가면서 중얼거렸다.

"굶어도 싸지 뭐......"

 

저녁, 좀 늦은 저녁상에 닭도리탕(닭볶음탕)이 올라왔다.
"?"

"닭을 수퍼 가서 사왔잖아, 오래된 건지도 모르는데 찜찜하구로..."

소근소근 뒷담화로 아까 내막을 들은 딸내미는 싱긋 웃는다.

"그래도, 두 가지 는 두 가지, 맞다 아니가..."  어거지 하기는 했지만 내가 내한테 씁쓸+떫뜨름.

이거 정말 걱정이다.

앞으로, 내가 나를 못미더워하게 되면 우짜까...

 

치매예방에도 커피가 효능 있다... 카니까 - true

커피를 더더욱 줄창, 많이 찌인하게 마셔야지 뭐.

 

베란다 구석지, 낯선 곳에서도 로즈마리 향은 은은타, 이런 건망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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