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 그 여운/블랙커피

봄도다리 넣은 쑥국을 위해서

가을길 2012. 3. 30. 20:51

 

 

보슬비나 이슬비, 오락가락하는 금요일 오후,

하찮은 비지만 선뜻 멀리까지 가서 쑥을 캐기엔 좀 그렇다, 싶어 - 본래 계획은 공주 갑사 쪽-

우산 하나씩 챙겨 들고, 걸어서 한 2~30분 쯤 거리의 강가로 갔다, 둘이서.

오래 전, 계원들과 부부동반으로 어딘가의 야산에 가본 후, 둘이로써는 처음인 나물나들이.

 

쑥을 좀 캐서,
1. 쑥털터리 (버무리)도 해먹고,
2. 조갯살 넣은 쑥국도 끓이고 (옆지기는 도다리를 넣자고 했다)
3. 말려서 쑥차를 끓이면 기관지 안좋은 딸내미한테도 득 될 것이다! 옥희이~~~

야 무 진 꿈 으로 출발!

 

하상도로 옆, 아직은 어설프게 보이는 풀밭에 노란 비옷의 할머니는

언제부터 였던지, 커다란 비닐 봉지 두 개째를 거진 다 채웠네.
익숙한 손으로 자디잔 쑥을 가위로 삭삭 잘라 담는다.

아하, 쑥은 가위로 잘라야 하는 거구나... 뭔가 초장부터 좀 난감해진다,

우리는 모종삽 하고 날 무뎌진 과도 하나.

빗줄기는 굵어지고, 바지는 젖어오고... , 하지만

둘이 다, 선뜻 '그냥 가자...' 라는 말은 절대로 먼저 안하지.

 

조금은 이른 철인지, 키가 1~2cm 정도도 채 안되는 크기들의 쑥,
거기에 칼을 대기도, 모종삽 찌르기도 영 그래서 심드렁 한 마음이다.

그냥 터덜터덜 저어만치 유채밭 보이는 곳 까지만 가보기로 한다.

중간 중간, 옆지기는 쑥을 잘라서 담긴 담던데, 거 뭐 쪼매난 검정비닐 봉다리는 표시도 없네.

"사먹는 게 싸다는 말이 딱 맞재? 마, 가자."

"아직 좀 이른갑다, 철이. 한 일주일은 더 있어야 되겠네..."

옆지기는 미련이 남는다.

"도다리 사서 국 끓일라 캤는데......"
옆지기는 광어나 도다리 넣은 쑥국, 미역국을 억수로 좋아한다, 나는 좀 별로...다.

"그럼, 바로 시장에 가서 도다리 하고 쑥 사지 뭐. 자아, 돌아 갑시다 돌아갑시다... ♬"

터덜터덜길, 터덜터덜 다시 돌아오는데, 마음 좀 상한 옆지기는 시장도 가기 싫단다.
그래서 길가의 자판기 커피 한 잔씩 마시면서 '그냥' 왔다.

 

옷 갈아 입고 바둑 생중계를 보고 있는데, 거실의 옆지기는 똥구멍으로 숨을 쉬는지, 조용~~~ 하네.

그러다, 내가 깜빡 잠들었던 모양인데,
"자아, 이거 보소."

옆지기기 주먹 반쭘 되 보이는 푸르스름 덩어리를 내민다. 쑥 다듬어서 삶은 모양이다.

"쑥이가, 도다리도 없는데..."
"내일, 도다리 한 마리 사야지 뭐..." 헤헤헤

힌 줌도 안되는 것이지만, '우리'가 캔 것이라서 맛있게 먹어야 한단다.

그래, 맞다!

설령 도다리가 쑥보다 많아지더라도, 우리가 캔 쑥 아니더냐. 우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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