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천지 꿉꿉턴 장마 끝이면, 갓 쓴 선비님들은, 머슴에게 지게 가득 가득 아끼던 책들을 지워서는
바람 좋고 볕 잘드는 골짜기로 가서 눅눅해 진 책들을 바람 쐬 주었다. 이것을 거풍 擧風 이라고 하는데,
거 뭐, 책만 꿉꿉한 것 아니고 사시사철 사타구니 새에 끼어서 볕 한 번 못보고 지내는 소중한 陽物 에도
바람 쐬여 주고, 햇빛에 비타민D도 공급을 해주고 싶어지는 것.
그래서, 솔 그늘 좋고 따땃~한 바위 아래에 부자지를 꺼내놓고 앉아 '청산리 벽계수...' 을 읊는 것도 거풍이라 했다.
그런데, 오 뉴월 염천에 샅 꿉꿉한 것이 어디 사내놈들 뿐이랴.
골짝 동네 아낙들, 묵은 옷가지 들고 개울로 나와서는, 이왕... 싶어 속곳 벗어내고 허연 허벅지에 맴치마만 두르고서 빨래를 한다.
소나무 그늘에서 이를 보다가 저으기 회가 동한 선비, 문자가 아니 나올 수 있나.
'천변홍합개 川邊紅蛤開 개울가에 홍합이 열렸구나'
개울가 아낙도 보통내기 아니어서 절창으로 화답을 한다.
'송하송이동 松下松餌動 소나무 아래 송이버섯이 꿈지럭 거리네...' - 고금소총을 좀 각색 했음.
즐거운 거풍 !
흠흠흠... 하숙생 병태는 거풍 이야기를 잼나게 읽었다.
장마 사이 사이 햇살 좋은 날,
거풍 생각이 난 하숙생 병태가 5층 옥상에 올라가서 자리 한 장 깔고서
홀라당 아랫도리 벗고 썬탠을 시키고 있는데, 오 마 갓!
병태 윗층의 아줌마가 빨래를 널러 왔다가, 지도 내도 서로 놀랐다.
"학생, 지금 뭐하는 거얌?"
"꼬, 꼬추 말리고 있는데요..."
아줌마, 저어만치 떨어져 앉더니 치마를 훌렁 걷고 속곳을 벗어내리고 해바라기를 한다.
"아, 아줌마 뭐하시는 거예요, 지금?"
"고추 포대 좀 말리려고."
며칠 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 친 두 사람,
아줌마 : "고추 다 말랐으면 이제 포대에 넣어야지..."
공장 펜스 옆의 고추밭 (들깨, 콩, 고구마도 있다)에 빗방울이 예쁘겠다 싶어서
장화, 비옷 차려 입고 카메라 들고 갔더니,
약아빠진 빝 주인이 좋은 고추는 어느새 싹 걷어 가고 잔챙이만 있네.
- 이 밭 주인, 작년에, 들깨 좀 팔라고 했더니 자기도 모자린다고 안된다. 나중에 고구마 좀 준다더니 하나도 안 줬다.
사진 몇 장 찍으면서 왔다갔다 하는데, 어느새 밭주인이 인기척 느끼고 나와서
"비 오는데 뭘 하시나?" 말을 건넨다.
"아저씨 '꼬추'좀 볼라꼬예. 근데, 아저씨 '꼬추'가 참말로 별 볼 꺼 없네요."
"實한 거는 따서 말리고 있는데?"
"아저씨 '꼬추' 실할 것 같지않은데..."
"무슨 말이요. 내 꼬추는 신탄진 장에서도 알아 주는 꼬춘데"
"아저씨 '꼬추' 알아 주는 사람은 아지매 뿐이겠지요, 뭐..."
그제사, 이 영감탱이 눈치를 챘다.
"허허이, 거 참..."
비오는 고추밭에서 둘이 웃었다.
철 늦어 어설픈 고추꽃도 지가 뭐 안다는 듯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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