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 그 여운/블랙커피

종점에서 - 길은 길에 연하지 않고

가을길 2013. 8. 28.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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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아침 문득, 언젠가 낯선 번호(22번)의 시내버스가 장태산 휴양림을 지나서 산속으로 가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 버스 종점은 어디였을까...? 인터넷 검색을 해서 22번 버스 탈 수 있는 정류장을 알아보고, 그 종점까지 가보기로 합니다.

카메라 젖지 않도록만 짐 꾸리고, 혹시라도 굶으면 안되니까 맥주 한 캔, 마른 안주 한 줌...

 

두 번을 환승해야 하므로, 환승하는 요령 교육을 단디 받고서, 옆지기에게 교통카드 빌렸습니다.
서대전 어떤 정류장에서, 70분에 한 대 다닌다는 22번 버스를 무난히 탔는데,

내 차로 자주 가 본 적 있는 장태산 휴양림을 지나고서는, 버스안에는 달랑 나혼자 남았습니다.
버스기사는 좀 의아한 듯 백미러로 가끔씩 나를 힐끗대고, 나는 나대로 이 큰 버스를 혼자 타고 가는 것이 좀 미안코...

 

버스는 휴양림 지나서 깊숙한 골짜기로 자꾸 자꾸 가는데, 보이는 곳 마다 마다에 펜션 펜션 펜션...

어느 골짝, 물가에 쓰레기 생산공장을 세워놓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 나중에 알았지만, 그 골짜기의 땅값이 평당 100만원 이랍니다.

좀 한적해진다 싶더니, 참 횡량한 공터에서 버스가 꽁무니를 돌리고 섰습니다. 종점인가 봅니다.

빗줄기가 하도 날카로워서 선뜻 내리지 못하는데, 버스기사가 "예까지 뭐하러" 왔냡니다.

'그냥 구경 좀...'  대답 하고서 모자를 고쳐쓰고 베낭 들쳐메고 나오니, 빗줄기 너머 저쯤에 몇 집, 동네가 보입니다.

우선 비를 좀 피하려, 지붕에서 물 뚝뚝 듣는 간이정류장에 우두커니 서서 담배를 꺼냅니다.

버스기사도 종종걸음으로 내 옆으로 와서 담배에 불을 붙입니다. 
포장도로가 끝난 자갈길은 어디까지냐고 물었더니, 한 10분 걸어 가면 요양원이 하나 있는데 거기 까지랍니다.

담배를 다 피운 기사는, '여기 다니는 버스는 70분~80분 간격으로 있다' 면서 버스만 데리고서 왔던 길로 가버리는데

모퉁이 돌아 나가는 버스의 빨간 미등이 보이지 않게 되자

갑자기, 참 막막해졌습니다. 이정표도 없는 곳에 '홀로' 서서...

 

막막... 이 표현이 맞습니다.

(물론, 암만 못해도 70분 정도 기다리면 버스가 다시 올 것이고, 그동안 나도 우산 들고 슬슬 걸어서 왔던 길로 되짚어 가면, 시간 보내기 일도 아니지만.)

 

다음은,

'길 끝'에 홀로 남아서, 아주 아주 잠시동안 느낀 것입니다..

 

'어디로 가야되나......

 

몸뚱이가 갈 수 있는 길은 거기까지였습니다.

거기에서 길은 

'보이지 않는 길에 연하였습니다. 

 

 

몸뚱이가 갈 수 있는 길이 끝난, 거기에서 연하는 길 
어떤 소식도, 어떤 소문도 들려 온 적 없는

그 무뚝뚝 함 앞에서

내 영혼은 얼마나 막막해 할까

그것이 불쌍해서 불쌍해서

길 끝에 누운 내 육신은 늘 편치 않겠네

영혼은 없는 것이 낫겠네.

 

- 여기까지가, 낯선 종점에서의 생각 입니다.

- 물론, 잠시 뒤에는 철벅철벅 빗속을 걸어 양봉장에도 가보고, 낯선 이들과 인사도 하고, 빗속에 참나리도 찍으며 원대복귀 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로도 그때의 그 '막막함'이 가끔 가끔씩 떠오릅니다.

생명활동 - 사고, 움직임,반응... - 은, (생체내의) 전기작용이 유지될 때 까지만 입니다.

세상 어느 수퍼컴퓨터도 비교가 될 수 없는 성능의 우리 두뇌도, 전기작용이 유지되지 않으면

그것으로 모든 기능이 정지됩니다. 사랑했고 원망했던 그런 이성, 감정까지도 다 지워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세, 영혼...의 존재 여부는 제게는 전혀 논란 거리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종점에서 잠시 동안 느낀 막막함은 왜였던지, 아직도 막막합니다. 

 

 

※ 혹시라도, 이 글을 '믿는' 분이 읽고서,

   '거 봐. 그렇게 방황하는 영혼의 갈 길을 찾아주는 것이 바로 우리 '신'이야...' 라는 말씀을 하기는 없깁니다.

   '막막함' 이후의 것에 대해서는
   '믿으라!' 며 외치고 다니는 누구도, 우리에게 보여주지도 들려준 것 없습니다, 인류 역사 이후로,

   

 

그저, 그냥 잠시의 막막함 이었더라는 것입니다. '방황'은 결코 아닌.

길은, 보이지 않는 길에도 연할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