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 그 여운/블랙커피

작은아버님의, 書室에 대한 삐짐

가을길 2011. 5. 28. 10:05
漢字 한 字를 百 번 쓰면 '잘쓴다' 라는 말을 듣고,
千 번을 쓰면 '명필' 이라고, 萬 번을 쓰면 '하늘이 내린 글씨' 라고 한다던가.

한 글자에 만 번... 그정도면, '자기流'는 가질 수 있음직도 하겠다. 

 

"먹을 갈때는 말여, 벌,나비 날아 댕기듯 살근살근 갈고, 글을 쓸때는 황소 힘으로 써야는겨..." 
평생 친구로 몸에 배어버린 술 때문에, 이제는 손 떨리고 눈 흐려서 줄을 제대로 못 맞추겠다 시면서도

여든 다 되신 작은 아버님, 가끔씩 먹을 가신다. - 2~3년전, 다시 시작 하셨다는 붓글씨 쓰기.

'잘 썼느니, 어쩌니 ...', 뭐, 남들의 그런 소리 들으려 하시는 것 아님을 안다.

지난 주, 할머님 추도식 참석차 작은아버님 댁에 갔을 때, 글씨 연습 묶음의 부피가 설날에 본 것에서
별반 늘지 않은 듯 해서 여쭈었더니, 이제는 서실에 가시기 싫으시단다.

 

"거기가 말이야 묘한 데야, 우리 (작은아버님들) 어릴적 할아버님 - 내게는 증조부- 서당에서
배웠던 體로 글을 쓰면 서실 선생이 자꾸 그렇게 못쓰게 해.
꼭 자기가 써 준 체본대로 쓰라고 하니까 재미가 없어.
그건 선생 자기 글씨지,, 왜 남더러 꼭 그렇게 쓰라고 하는지모르겠어.
들리는 말로는, 그런 體들은 어떤 선생들에게서 이어져 내려오는데,
어디에 출품해서 상 받고 할래믄 그런 체를 익히고 써야 심사위원의 눈에 띄어서 입선이라도 한다는게야. 차암 웃겨서.
내가 뭐 어디 내글씨를 내놓고 댕길라고 하는겨?
그리고, 네한테 한 번 물어보자, 잘 쓴 글씨 하고 좋은 글씨, 그 차이가 뭔겨?"
전혀 생각해본 적 없는 질문이라 답을 못했더니,
"선생이 그러는거야. 한석봉이의 글씨는 잘 쓴 글씨고. 왕희지 글씨는 좋은 글씨라는데
 난 도저히 이해가 안되. 지 생각은 지 생각이잖아..."

에구~ 작은아부지,
" '그래, 늬들은 그렇게 살아라...' 하시고 마실 것을요. 그런것에 삐지시면 '재미'가 없잖아요. 
   황소힘으로 마음껏, 많이 많이 쓰세요. 그러실래믄 이제 술은 쪼매씩만 드시구요,"
- 숙모님은 삐죽이신다. '요새도 소주 펫트 댓병으로 한 병을 이틀만에 다 드셔...' 으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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