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 그 여운/블랙커피

일요일 아침, 한 모금 물을 마시다가...

가을길 2012. 1. 15. 11:49

 

 

기원에서 담배 한 곽을 7시간만에 다 피워버린 어제의 후유증 때문인지,
늦은 잠에서 깬 입안이 참 텁텁하다.

그래선지, 습관이 되어버린 식전커피(휴일에만 그런) 보다 '찬물'이 땡겨서
냉장고에서 결명자차 한 잔을 커피잔에 따뤄 들고서 베란다에 나갔다.
흐린 하늘, 심심한 까치는 메타세콰이어 가지에서 꽁지 간당거리며 혼자 놀고...

한 모금 물을 마신다. 마시다가,

 

'한 잔의 물을 마시고
 나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뜬금없는 생각을 하고서 피식 웃었다... , 저어기서, 故 김춘수 시인도 웃고있겟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님의 '꽃' 중에서

 

혹시? 그시인도 이렇게 물 한잔 마시다가 그글을 썼을래나?
참, 이런 엉뚱한 생각이라니, 이제사...

 

오래전에 써 둔 글 생각이나서 뒤적였다. - 김춘수 시인이 타계한 즈음이었던가보다.

 

 

<2004.11.30>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첫 날, 담임 선생님(국어 담당)과의 첫 대면.
칠판에 자신의 이름 석 자를 한문으로 써 놓고,간단한 자기소개를 한 후
칠판을 깨끗이 깨끗이 닦고서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 꽃, 김 춘수

판서를 마치고, 딱 한 말씀 "내가 제일 좋아하는 詩 이다."
선생님과, 그 시를 번갈아 보다가 노트에 베끼고서
문득 본 창밖의 하늘, 그 깊은 푸름이 갑자기 그렇게나 눈부셨다.
'詩' 흉내를 내면서 왔다갔다 하기도 하고, 
더러는 '시인'들의 글도 읽고 했었지만, 막상
마음에 닿는 무엇을 느껴 본 적 별로 없어 흥미를 잃어가던 때 ,
'꽃', 그 첫연과 마지막 연이 비춰 준 그 눈부심!

 

그 느낌, 아직도 
시리도록 눈부셔서
마음을, 글을 추스리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

 

시간이 가더니,
친숙하게 느껴지던 '아름다운 사람'들이 하나, 둘 스러져 가더니...
김춘수 시인도 그렇게 갔다,
그날의 눈부심은 아직도 여전한데, 내게는... <2004.11.30>

 

 

내가,

언제 한 번

다정하게 내이름 불러 준 적 있나
잡초 만큼도 여겨지지 않음에도
서운타 하지 않는 내가 만만해서

나를 위한 깨끗한 물 한잔 접시에 받쳐 준 적 없이... - 2012.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