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 그 여운/블랙커피

새벽 시장

가을길 2013. 7. 2. 13:27

 

 

 

 

'새벽장' 처음 가봅니다 (오전 6시)
기존 시장(역전. 중앙시장)에 터를 잡은 장사치들 말고, 역전광장 주차장에, 새벽부터 한 여덟시 까지
가까운 촌에서들 나와서 나름나름 채소, 과일, 건물거리를 펼쳐놓고 파는 반짝시장입니다.

역전에 이르니, 저만치 웅성웅성 왔다 갔다 하는 모습들이 막 시작되는 해돋이에 긴 그림자로 볼 만 합니다. 
굵직한 감자 한 봉지 사고, 그 옆자리에서 양파 한 봉지를 사는 데,
양파 아저씨는 덜렁 긁은 놈 세 개를 더 넣어 줍니다. 여긴 살아 있네, 인심.

시장안에서는 어림도 없는, 바라지도 않는 덤입니다.

 

반짝 시장 끄트머리, 역전시장 입구에서 강황을 파는 아줌마 리어카는 아직이라서
길건너 중앙시장으로 가니 그쪽은 아직 불도 안켜놨습니다.
묵밥집,빈대떡집, 정육점, 간고등어 아지매도 없이, 바닷속 같은 데 꽃집 사람들만 부지런히 화분 내다놓고 있을 뿐.

도로 역전시장으로 건너와서 마악 문을 여는 생닭집 앞에서 머뭇댑니다. 닭죽을 끓여줄까... 하다가

옆지기가 별로로 하기 때문에 초복 즈음에 사기로 합니다.
옆지기 단골빵집에서, 막 튀겨 낸, 팥 듬뿍 든 도넛 - 3개 천원, 아주 따끈 합니다. 아침엔 따끈따끈한 것을 살 수 있네요.

녹두앙금빵 - 3개 천원, 식빵 한봉지. 크로케는 아직 안만들었다고 합니다. 옆지기는 그집 크로케를 좋아 하는데...

 

기존 시장이 시작되는 인도를 따라 주욱, 터줏대감 같이 구는 장사치들이 앉아있습니다.
완두콩은 이제 철이 지났는지, 껍질째 파는 강낭콩 뿐인데 아무래도 너무 비싼 듯 해서 포기합니다.

방송을 타서인지, 전엔 거들떠 보지도 않던 개똥쑥의 몸값도 같잖게 비쌉니다.
생 것 썰어서 두 홉도 안되보이는 됫박에 담긴 것이 오 천원. 쇠고기 보다 비싼 값에 아무도 사는 사람이 없습니다.

토박이 장사치들의 재래시장, 그네들에게서는 예전의 푸근한 덤, 인심은 사라진지 오랩니다.

깻순 볶아먹을까... 싶어, 잠시 '머뭇' 했더니, 눈치 빠른 50대 아줌마가 얼른 까만 봉지에 담으려 합니다.

"이거, 씻어야 돼지요?" 
"아, 씩꺼야지요 (씻어야지요)..." 신경질, 빈정거림이 섞인 투로 돌아오는 경상도 억센 말씨의 대답이 영 퉁방스럽고 불손합니다.

사근사근 웃으면서 대답 했다면 한 바구니 샀을텐데, 기분이 영 아닙니다.
"다음에 사께요..." 하고 걸음 떼는데, 이 아지매가 패악 비스므리 하게 한소리 합니다.
"세상에, 이런 거를 안씻고 먹는 사람이 어딨는고..." 이거, 가만 놔두면 안되겠습니다.

본시 좀 굵은 톤인 내 목소리에 힘을 딱 주고서, 일부러 고향 사투리로 힘차게 다그쳤습니다.
"이 아지매, 이거 와 이래 패악이고? 그거 물어보는 기 뭐 잘못 됐나?"

오마나, 이 아재 성질 있는갑네... 싶었던지, 아뭇 소리 안하고 고개 숙이고 딴 짓 합니다. 몬 땐 여편네.

 

다시 반짝시장,
자글자글 주름 가득한 할매앞에 비름나물이 가득 합니다. 삶아서 무쳐 먹기로 하고 한 바구니를 카트에 담았습니다.

여덟시가 가까워졌는지, 주섬주섬 짐들을 꾸리는 분위기, 파출소 순경이 저만치에서 은근히 파시를 재촉하는가 봅니다.

딱딱거리고, 호르라기 불거나... 뭐 이러지 않아도, 거둬야 할 때 맞춰 돌아들 갈 줄 아는 마음 씀씀이가 있습니다, 반짝시장. 

내일 새벽에 다시 반짝거릴 새벽장이 파장입니다.

제법 묵직한 카트를 데리고 돌아옵니다.

 

옆지기 하고 따끈한 도넛 먹다가, 피식 웃었습니다. http://blog.daum.net/decent0824/4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