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를 한다.
"물 끓일 건데, 양파(자주색)를 몇 개 넣어야 되노?"
"5개 넣는데, 위에 꼭지만 자르고 뿌리는 잘 씻어서 껍데기 채로 하소."
"주전자에 하믄 안되나? 압력솥에 해야되나? 내사 압력솥 안해봤다 아니가"
"이번에는 주전자에 그냥 하소..."
"알겠다. 약 단디 묵고 있거래이..."
전화를 한다.
"빨래찌개는 어째 끓이노?"
"빨래찌개요?"
"속옷 삶아볼라꼬."
"그냥 빨래통에 넣어 두소. 내가 가서 할 거니까."
"속옷은 그때 그때 해야된다면서? 홈쇼핑 보니까 안 삶고 빨래하는 것도 있던데, 그거 사가지고 오까?"
"또 무슨 소리요. 그런 거 쓰면 안된다카이. 욕실 코너에 가루비누 두 숫가락 넣고요..."
"내 빤수는 맨날 삶아 조지네. 알겠다. 등더리 물집은 좀 낫나? 밥도 단디 묵어래이..."
전화를 한다.
"자동차세 이거는, 꼭 은행에 가서 내야되나? 인터넷에서 안되나?"
"잘 모리겠네요. 나는 늘 은행에 가서 냈는데. 언제까지요?"
"7월 1일까지던가, 하여간 글타."
"그라믄 놔 두소, 내가 가서 내께."
"그라믄 좋지, ㅎㅎ. 당신이 고장 나니까 귀찮은 것도 제법 있네. 따라(딸아이)가 좀 잘 챙기주나 우짜노?"
"예, 여기 걱정하지 말고 당신이나 잘 챙겨드소."
전화를 한다.
"쌀 안칠 때, 콩을 몇 개 (조그만 바가지) 하노? 현미는? 보리는?... 그냥 쌀만 해도 되재?"
"또 또 꾀부리재. 쌀만 하믄 안돼, 당신. 콩은 얼마, 보리는, 현미는..."
"마 됐다. 요번에는 쌀만 할란다. 오랫만에 흰쌀밥에 스팸! ㅎㅎ~"
"그래 하다가, 늙어가주고 아푸니 어쩌니 할라꼬. 절대로 안된데이..."
"마, 됐다. 당신은 약도 잘 챙기 묵재? 그래, 있거라이..."
뭔지 모르겠네. 홀살이 사흘만에
그전엔 전혀 의식조차도 하지 않았던 것들에서, '이거 리듬이 반 박자 쯤 어긋나네...' 싶음이 느껴짐은.
제시간에 제대로 된 밥먹고, 추하지 않게 하고 나다닐 수 있었던 것들 뒤에는
내가 잘해서가 아니고, 메트로놈 처럼 또박또박 리듬을 지키게 해 준 뭣이 있었더라는 말이네...
"전염성이 있다고 하니, 당신한테 옮으면 안되잖아. 한 일주일 **이(딸내미) 한테 가서 있다가 오께요..."
몸살인가... 싶어 병원 갔더니 '대상포진' 이라고 한다면서, 옷가지 둬 개 챙겨 택시타고 간 옆지기.
지가 메트로놈이었던 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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