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 그 여운/블랙커피

봉황은 솔개의 깊은 뜻을 알턱이 없다...

가을길 2011. 11. 1. 21:54

 

바스락 대는 오동잎 소리에 잠을 봉황,

100년만에 열매 맺는 대나무 열매竹實를 맛나게 먹고, 한 줌은 포켓에 넣고서

어마어마한 날개, 폭이 사십리가 넘는 날개를 폈다,

구만리 장천 저어기의 친구에게 한 달음에 날아가서 차라도 한 잔 하려.

가을빛 고운 산, 반짝이는 가을강, 한적한 들을 지나 그렇게 그렇게 날아 가는데...

 

밤 내 엉성한 둥지에서 잠 설치고 배고파 썽질 난 솔개, 냇가 버드나무 꼭대기에서 종일을 꼬누던
눈이 번쩍, 빛났다.

오호라, 조오기 조오기 기일다란 꼬랑지의 오동통통 들쥐 한 마리!

소리없이 날아든 무쇠발톱에, 들쥐는 뒤통수, 척추에

단 일격에 구멍 뚫려서 끽소리도 못하고,
우리의 솔개는 오동통통 들쥐를 억세게 움켜쥐고 날아 올랐다.

이게 올마만의 진수성찬 다이닝이얌, 자랑스런 우리의 솔개는 의기양양 둥지로 돌아가는데...
아니, 이게 모야? 이 불길한 그림자... 이게 모야?
온천지가 덮이도록 시커먼 그림자가 해를 가린다.

 

솔개는 봤다, 흐미, 봉황, 봉황이 저넘이

내 저녁거리를 뺏으려는 갑다, 아  안돼, 노 네버!

삐이이익~~~ 쇠칼로 유리창 긋는 소리로 솔개가 경고신호를 보냈다.

시커먼 그림자는 그냥, 그렇게

그냥, 날개짓 한 번도 없이 훠얼 훠얼 산너머로 갓다.

 

그럼 그렇지!

솔개는 무지무지 뿌듯했다.

짜식, 오데서 감히, 넘 볼 걸 넘봐야지...

둥지로 돌아 온 솔개는 온동네 이웃들에게 침 튀기며 자랑했다.

아, 글씨, 거 봉인지 황인지 말여, 덩치만 컸지 말짱 허당이더라고.

내가 소리 함 삐익~ 질렀더니, 뒤도 안보고 가뿌리두만...

 

설산에 도착한 봉황은, 차 한 잔 마시고, 죽실 한 줌 같이 먹고는

그냥 돌아왔다. 
봉황들은, 다음에 대나무 열매 맺히면 또 차 한 잔 같이 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