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 그 여운/블랙커피

마다할 수 없는 커피...

가을길 2012. 1. 10. 21:04

 

 

거래처 사무실에서 일을 마치고, 현장(공장)으로 간다.

그 사나이가 거기 있을 것이니까.

 

밀링머신 옆, 책상에 앉아서 다이얼 게이지에 집중하고 있는 사나이,
나보다 꼭 10살이 많은 '박과장'... - 예전 직책 그대로 부른다.

어깨를 툭, 건드리니까 놀란 눈으로 돌아보다가, 이내 곧 환~하게 웃는 얼굴이라니!

칠 십, 일흔살인데도 그 웃음 그렇게 환하다.

시부지기, 씨익~ 눈웃음만 주, 받다가, 박과장이

검지손가락을 자기 코에 갖다댄다.

 

박과장, 농장애자다.

박과장이 20년도 더 오래 근무하고 있던 회사에, 10년이나 젊은 내가

새로운 담당부장으로 부임했을 때에도, 그는 그저 반가워 죽겠다는 웃음, 그 얼굴이었다.
그때부터 같이 근무 한 시간, 7~8년, 그리고
따로 따로 다른 회사에서 근무하게 되면서 자주 보지를 못하게 된지도 15~6년...

이럭저럭 20년이 훌쩍 넘게를 그를 알아오고 있다.

내 게으름 때문에 수화를 많이 배우지 못해서, 수화로는 아주 쉬운 이야기밖에 못하지만

필담(글) 주, 받을 수 있어 업무협의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그, 장애만 아니었으면, 까짓 100 여 명 생산부 운영이야 암것도 아니었겠지만
대외업무가 원활하지 못하다는 핸디캡 때문에 평생을 '과장' 직함이어야만 했던,

그러나, 구김살 하나 없이 사람을 대해주는 마음은 정말 넉넉하다.

여지껏 내가 본 중에, 가장 아끼고 싶은 기술자 이자 '사람'!

- 박과장 부인의 말로는, '이부장이 회사에 새로 와서 정말 재미있다, 좋은 사람이다...' 라고

  집에서, 늘 내 칭찬을 했다던데...  - 뭐, 꼭 그래서가 아니다.

 

이쁘다, 좋다, 아니다, 싫다, 집, 전화... 이런 수화를 박과장에게 좀 배웠었는데

가장 간단하고 자주 써먹던 것이, 바로 커피!

검지손가락을 코에 대면, '코피' 마시자는 말이다.

 

조금전, 그 사무실에서 '믹스' 커피를 마셨고, 또 그 현장에도

믹스커피밖에 없는 것 알지만, 오케이!

당신 속내 알 턱없는 젊은 사람들만 바글한 공장 구석지에서 조금은 외로웠을 당신이
나를 반가워 반가워, 코를 만지는데, 믹스면 어떻고 설탕물이면 어떨까...

종이컵에, 누룽지 붙지 말라고 잘 저어서 주는 커피 마시면서 필담을 한다.

 

이제, 어깨도 자주 아프고 눈이 어두워져서

올해만 하고 쉬겠다는, 박과장의 글을 보면서, 참 찌잉하다.

평생을, 옆그늘에서 볼 수 밖에 없었을 직장이었을테지만,
정상인인 우리도 그럴 수 없는 성실함으로, 열 네살 적 부터 당신이 지내왔던 것들을

이제는 떠나야 하는가 봅니다......

 

할 수 있는 동안은 늘 그랬듯, 야무지게 단도리 해주소......

당신, 다른사람들에게는 늘 든든한, 든든한 버팀목이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