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 그 여운/블랙커피

껄끄러운 국수

가을길 2011. 8. 15. 21:49

 

컴퓨터로 바둑두다가 거실로 주문을 한다.

"컴방에 너구리 한 마리!"

"잘 밤에 무슨 라면?, 포도나 먹고 말지...' 
"내가 소가? 풀만 먹고 살구로..."

 

꽁시랑대며 식탁에 올려준는 라면을, 천천히 천천히 먹다가.
멎어버리는 생각 ... '껄끄러웠던' 국수

국민학교(초딩) 4학년 여름, 정동진
요새는 '우리밀'로 만든 국수, 빵... 등이 '웰빙' 이니 우짜니 해서 귀하고 여김 받지만
제분시설 변변찮았던 시절, 방앗간에서 껍질째  간 밀락루로 만든 국수는
삶은 뒤 색깔도 약간 불그레 하고, 껄끄러워서 내가 먹기에는 영~ 아니었다.

정동진, 지금이야, '모래시계' 덕분에 기차역 부근의 겉껍질은
영낙없는 '관광지' 형색을 지니게 되었지만,
 지금도 정동진 역에서 산 쪽으로 한 십리 들어가면 멈춘 시간을 볼 수 있다.

찌걱대는 장화로 시커먼 물구덩이들 밟으면서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마루에 엄마와 어떤 아줌마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대충 인사를 하고, 씻고나와 마루에 나가 보니 엄마가 국수를 살 모양이다.
아줌마는, 자기네집 밭에서 거둔 밀을 강릉에 가서 빼왔다는 국수를 팔려고...

- 지금이야 수제비, 국수, 자주 못먹어서 그렁대지만, 어릴적엔 그런 것들이 정말로 잘 먹히지 않았다.
먹기 싫은 국수에 심통이 나서,
"어머니, 그거 사지 마세요. 색깔도 이상하고, 이거는 안먹을래요..."
그러는데, 그 아주머니 : "야가 우리 **이 하고 한반이래요? 아이고, 머시마가요 참 이뿌네..."
- 그 아주머니는 같은 반 친구의 어머니셨다. - 친구 이름, 기억하지만 부끄러워서 못쓰겠다.

아주머니의 말을 듣고서, 어린 마음에도 무안하고 미안하고... 했지만 
이왕 부린 심통 때문에 더 뻗댔다.
"저거는 목구멍이 간지러워서 못먹어요......"
그러자 친구 어머니가 잠자코 나를 바라보셨다. 
그 눈빛이 말하던 착잡, 서글픔...... 정말 죄송합니다, 어머님...... 

눈 몹시 오던 날 밤, 밤참으로 그 국수가 상에 올랐는데 
몇가닥 깨작째작 씹다가 국물만 먹는 나를 지켜보시며 벼르셨던 어머니,
"니는 음식을 그래(그리도) 개리노(가리느냐).
이런 국수를 우리사 맛으로 먹지만, 너거 친구집에는 없어서 못먹는다 카더라.
저번에, 너거 친구 엄마가 국수 이고 왔을 때,
니가 하던 행구지(행위)는 정말 몬땠더라, 어데서 그래 몬땠게 배웠노. 
우리가 뭐 밸시리(별스레) 넘들보다 잘산다꼬, 그 엄마 있는데서
'국시가 껄끄러워서 못먹는다' 카는 소리나 해쌓고...
우리사 밤참이라꼬 묵지만, 이런거라도 지때 지때 (제 대 제 때) 묵는 아아들이 (애들이) 이동네에 몇이나 되겠노.
가(그애), **이 저거는 오늘 저녁에 시래기 죽이라도 먹었는가 모르겠다.
그런 아아들(아이들)한테 이래(이렇게) 해주믄, 얼매나 잘묵겠노 ... ㅉㅉㅉ...."

아버님(선친)이 나를 쳐다 보셨다. - 나 때문에 그런 눈빛 하신 것은 딱, 두 번  주시고 돌아가셨다... 
범눈 ! (호랑이눈) - 선친, 정말 화 나시면 꾸욱 다물고 바라만 보신다.
(실은 무섭다. 검도 유도 합해서 5단)

한동안을 그렇게 나를 보시다가, 아무 말씀없이 고개 돌리시던 날의
껄끄럽던 그 국수......

이상하게도, 그 뒤로는 밀가루 음식이 맛이있고 술술 넘어갔다.
하지만, 그날후로 **이 보기가 늘 미안했고, 50년 다 되가는 지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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