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 그 여운/블랙커피

가을저녁, 바람이 서늘도 하여

가을길 2011. 9. 17. 22:33

 

 

 

 

바람 하도 선선해서, 저녁내 참았던 담배를 사러 아파트 상가에 있는 수퍼로 갔다.
상가 입구에는 '치킨집'이 있는데, 그 앞, 파라솔 벤치에서
생맥주, 치킨을 먹고 있는 사람을 흘끗 보면서 지나가다가 문득 출출하단 생각,
저녁 먹은 것이 얼추 소화가 됐던지...
'흠... 맥주에 치킨이라...' 많이 땡겼지만, 달랑, 담배살 돈만 가지고 나왔기에 그냥 참기로...

담배를 사고, 그 파라솔 옆을 지나 몇 걸음 가는데,
"이봐요, 이봐요..." 부르는 소리...
글세, 이 아파트 동네엔 내가 아는 사람 몇 없기에 그냥 걷는데,
한 번 더, "아저씨, 이봐요."
나? 말인가 싶어 돌아보니, 파라솔 아래, 본듯한, 웃는 얼굴이 손짓을 한다.
"일루 와유, 시원한 거 한 잔 하고 가유..."
아 ! 그렇네, 이발소의 옛날주인 아저씨... !
- 상가 2층에서 이발소 하다가, 3~4년전에, 직원에게 인계하고서 은퇴했는데.

"아, 사장님, 여기 왠일로...?" 
그양반, 대답도 않고서 치킨가게 쪽으로 "여기 생맥 하나 더줘유..." 카고는 여전히 싱글싱글...

이발소 좀 더 할래도, 젊을 때 사고로 다친 다리가 자꾸 아파져서 할 수 없이 좀 빨리 접고서,
촌에 있는 밭에서 야채 좀 하고, 벌어논 돈으로 간신히 빚 안지고 살 수는 있는데 (여기의 아파트에서)
찬바람 불기 전에 아파트 팔고 촌으로 갈 거란다.
부인은 둘째 며느리 둘째 손주 낳는대서 오늘 거기로 갔고, 
바람도 선선하고 해서 나와 앉았었더란다.
오, 가는 사람중에 혹시 아는 얼굴이면,
당연히 자기 손님이었을거니까, 맥주 한 잔 사고 싶어서, ... 바람도 선선하고 해서....

맥주, 시원하게. 그리고 날개튀김 하나 먹으면서, 속으로 좀 미안한 마음 듦은... 흠...
전에, 이 아저씨와, 지금은 주인이 된 종업원, 둘이서 이발을 해주고 있을 때,
이 주인의 이발솜씨가 맘에 들지 않아서, 속으로 손님 숫자를 홀, 짝... ... 차례 가늠하면서
주인에게 이발하게 되는 것을 피하곤 했단 것을, 아마 이양반은 지금도 모를 것이다.
"이름도 모르고, 몇 동에 사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이발소 할 때
말은 없어도, 어째 호감이 가고, 인사 차릴 줄 아는 사람들, 중에 하나라서 ..."
나를 기억한다는데...

바람도 선선하고
생맥주도, 닭날개도 맛있었고,
이야기 들으면서, 거 참... 좀 미안하고...
촌에 가시더라도, 건강하고 유쾌하게 사이소!
집으로 가는 길,
가을밤, 서풍 부드럽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