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 그 여운/블랙커피

헌달력의 마지막 장 마지막 똥글뱅이

가을길 2012. 11. 30. 23:29

 

 

12월 2일 - 올해는 일요일.
연초에 그려 놨던 빨간 동글뱅이의 색이 좀 날랐다.

작년 연말, 그때는 젤로 새 것이었던 달력,에 표시를 해둔지도 1년이 됐다는...

 

옆지기의 56번째 생일.

지도 낼 모레가 육십이네, 거 참.

참 금방이다, 그쟈.

 

 

* 옆지기 30대 초반의 어느 생일,

미역국 아침을 먹고 출근했다가, 종일을 잊어버렸다.

- 아니, 생각이 났었더라도 헐렁한 주머니로써는 뭐 제대로 할 수도 없었겠지만.

퇴근버스에 내려서 어둑해진 아파트 골목에 들어서니 딸내미가 놀고 있다가 달려와 안긴다.

손잡고 상가를 지나가는데, "아빠, 엄마 생일인데요..."

아, 글쿠나!

그런데, 주머니에는 100원짜리 동전 몇 개 뿐.

까이꺼, 할래믄야 아파트 상가에서 외상 (카드가 없을 때니까)으로 뭐든 해도 됐겠지만,

수퍼에 가서 쵸코파이 3개, 사이다 한 병을 사고, 평소 안면 텄던 케익집에 가서

케익용 초를 옆지기 나잇수 대로 얻었다. 딸내미는 연신 신기해 하면서 쫄래쫄래...
- 융통성 없고, 너스레 떨 줄을 모르는 내 성격탓이다.

식탁위, 흰쟁반에 쵸코파이 3개 예쁘게 놓고 초를 꽂고 불을 붙였다.

작은손으로 손뼉을 치며 '생일추카~' 노래를 부르는 딸내미

아른아른 작은 촛불 너머에서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표정의 옆지기...

- 이 이야기는 옆지기 생일 때 마다 회자 된다.

 

* 5~6년 전 12월1일 밤, 

케익을 자르면서 딸내미가 풀죽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년 엄마 생일때는 내가 번 돈으로 엄마 케익을 사고싶다..." 고.

그때, 딸내미는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에 낙방해서 백조신세가 되어 있었다. 

 

* 오늘 낮, 딸내미가 전화를 했네.

"아빠, 내일 점심은 신탄진 장어구이집으로 가요, 제가 쏩니당~~~"

거 참...

그렇잖아도, 헌달력 맨 마지막장 마지막 똥구라미를 보면서 무얼할까 생각했었는데
짜식, 업무 감사 받을 준비에 일요일에도 출근해야 한다면서 말이지...

 

 

어느샌가 엉성해진 머리숱이 늦가을 바람에 더욱 안스럽습디다, 윤여사.

내일 점심, 또, 쵸코파이에 촛불 켰던 이야기 하면서

참 지지리도 융통성 없는 신랑, 제 가진 것 없으면 숨도 못쉬는 위인하고 산다고

늘 숨이 차더라면서 웃을 것이다, 윤여사. 흥.

 

삼 백 예순 날, 당신이 다 치러 낸 오만 동그라미들이 지워진

'아, 이제는 한적한 빈들'
이제, 마지막 남은 당신의 동그라미가 웃고 있네.

 

* '이제는 한적한 빈 들' - 고향의 노래 가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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