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예식장에서 아무도 없는 집으로 돌아 와 넥타이를 푼다.
오후 두 시 50분... , 참 어중간한 시간이네. 이제사 기원에 가기도 그렇다.
와글다글 식당에서 마신 소주 반 병, 낮술이 오늘따라 미진한 듯 싶음은 뭔지.
옆지기 친정 간 빈 집이 이렇게 심심할 줄 알았으면 차라리, 식당에서 기원으로 바로 가버릴 걸 그랬나...
옆지기 없으면 심심하구나!
'그래, 대전천변 길에 유채가 좀 폈을라나...'
심심한 이 오후, 요 심심이를 데리고 대전천 강둑길 털레털레 걷기로 한다.
봄볕 조심하라고 - 하긴, 옆지기는 늘 조심하라고 한다 - 주문처럼 해쌓는 옆집기 말이 생각나서
썬크림을 바른다. 시커멓게 해 가지고 다니지 말랬으니까, 옆지기 지금 없어도 말 잘들어야지.
오후 세 시, 운동화 신고, 모자 쓰고 털레길로 출발!
'홍수피해예방' 하상정비 한다고 3년을 내리. 다듬고 깎아내고 넓혀서 깨끗, 반듯해 져 버린
천변길, 보기에사 멀끔하지만 머리를 너무 짧게 깎아버린 듯 어설프고 서운하다.
있는 그대로를 좀 살려두면서 '큰물 피해를 예방'을 할 수는 없었을까?
성형수술 하듯, 깎아내고, 돋우고, 윤곽잡고...
사람 얼굴에만도 모자라서 알아서 흐르던 강줄기에도 성형수술을 해댄다.
중간 중간 물막이 콘크리이트 보 때문에 누치, 황어는 상류쪽으로 차고 올라가기가 힘들고
물고기 쉴 그늘자리 없앴으니 백로, 왜가리, 해오라기도 있을 턱이 없어
요즘은 녀석들 한데 모여 뽀시락거리는 모습 볼 수가 없다.
사람님 보시기에 좋으니, 이 강변에서 사람끼리만 살자... 뭐.
수양버들 :
바람 제법 센 강둑, 수양버들이 봄비 내리듯 쏟아지고 있다.
이왕, 저런 비가 왔으면... ,
푸른 비가 오면 얼마나 멋질까
'이렇게 좋은날에 이렇게 좋은날에
그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 정훈희. - 조영남이가 더 잘부른다.
수양버들 지나면 저어만치, 유채밭이 열린다...
유채 :
3년동안, 제방보수 공사... 따위로 유채를 심지 않더니만, 市에서 지난 늦가을 씨를 뿌린 모양이다.
늦겨울에도 꽃이 피고 등에 날아들더니만, 그때 꽃 피우던 그녀석은 지난 겨울 잘 보냈을래나.
http://blog.daum.net/decent0824/671
그곳이 어디였었던지 알 수가 없다.
지금 한 10% 정도 개화했는데, 줄기들이 모두 통실통실 봉오리들도 실한 것이
올 봄은 꽤나 볼 만하게, 너른 강변 가득히 노오란 빛, 진한 향이 좋을 듯 하다.
꽤나 넓은 유채밭을 털레털레 걸어 지나면, 오리, 백로, 왜가리들이 있을텐데... 백로? 있을래나?
아그들 :
빨간 스커프의 할매, "빨리 와, 할머니 이제 간다..."
"알았어, 빨리 갔다 와, 할머니..."
손녀는 언젠가의 큰물에 떠내려 와서는 모래톱에 머문 페트병에 모래를 담는다.
아마도, 저 병에 모래를 다 채우기 전에는 저 아기는 일어서지 않을 듯...
모래시계, 모래시계...
모래를 다 채우고, 시간을 되돌려 비워내고 , 다시, 다시, 또, 또...
할매는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목이 쉬어버리고, 아마도 그자리에서 봄볕에 구워져버릴 것이다. 털레털레...
꼬마는 피곤하다, 피곤하다...
어디에서, 얼마를 왔었던지 몰라도
덩달아 좀 부루퉁 부은 얼굴의, 예쁜 엄마도 짜증이 난다.
그러게... 이런 봄날은 자전거 조차도 타는 게 아니야.
털레털레 이렇게, 나같이 걷는 거란다, 햇살이랑 같이 걷는 거란다, 꼬마야.
빨리 가서 뭐하노. 그쟈.
졸리워 하는 꼬마의 억지 나들이는 언제까지일까...
꼬마야, 마 고마 내 따라 갈래?
오리도 보고 왜가리도 보고, 혹시나 누치가 텀벙 튀어 오를랑가도 지켜 서서...
늘 바쁘고 급한 어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란다.
오리 :
털레털레 걷는다.
페트병의 모래시계가 얼마나 찼을까,
자전거 꼬마는 이제 기분이 좀 풀렸을까나...
털레털레 털레털...
저만치, 반짝이는 여울 복판 돌멩이섬, 그 명당에 오리 두 마리, 합해서 십리!
짜식들, 야구팬인갑다. '보스턴 레드 삭스 Boston red Socks team' 매니어!
아주, 커플양말로 맞춰 신었네. 겨울 다 갔는데 보스턴으로 가지 뭐하러 여기?
햇살에 강물도 반짝이고, 돌멩이도 반짝이고
'마음 한가로워 섰다' - 이백.
왜가리 :
작년, 누치 튀어오르던 물막이가 저어기쯤 보인다.
누치가, 황어가 튈래나?
백로가 기다리고 있을래나...?
누치가 튀겨낸 물방울이 반짝일래나, 아니 누치가 튀어오르기엔 철이 좀 이른가 모르겠다.
조바심 하는 내 급한 걸음에 놀라, 핼숙한 갈숲에서 참새들 날아 오른다.
아, 좀만 조심조심 걸었으면 참새도 담을 수있었을텐데...
아니, 참새를 제대로 담자면 운이 좋아야 해. 감시하는 놈이 자불고 있거나
먹거리가 풍성해서 자리 뜨기에 머뭇거릴 때라야 하는 걸...
백로 한 마리, 노오란 주둥이의 큰 놈 한 마리가 퍼드득 날아간다.
아휴, 아까운 것... 백로는 날아가고. el condor pasa...
물막이 있는 곳엔 오리 뿐이네. 저 아래서 송사리 쫒는 왜가리 이넘, 올만이닷!
옥희 ok, 니는 오늘의 타깃 target. - 문제는, 오리던 백로... 던, 나하고 15~20미터의 거리를
꼭 지킨다는 것. 가까이 하기엔 내가 너무 좀 그런가? 토요일이지만 면도도 말끔히 했는데...
왜가리, 50미터 쯤 저편, 보 아래 물 괸 곳에서 첨벙이더니, 훌~ 날아와서
가을풀, 억새 쓰러진 곳에 착지, 성큼성큼... 거리는 약 이십 미터 쯤...
오호라, 녀석이 모델이 되어주기로 한 모양이다. 아,나는 운도 좋재!
온 길, 되돌아 가는 것 싫지만 저넘 따라가야 하니까 나도 저넘 걸음만큼씩만 사뿐사뿐...
왜가리 한 마리에 그림자가 둘 :
쌩유 ~ !
분위기 좋고 좋고
포즈 좋고 좋고 - 송대관
왜가리 이녀석 뭣 좀 아네.
물그림자, 바위에도 그림자... 처음 본다. 횡재!
이런 맛에 털래털래 하는 것이지...
아휴, 이제 그만 따라 댕겨요.
졸레졸레 따라 댕기는 내가 엔간히도 신경쓰이던지, 아니면
바쁜 일 생각이 났던지 나래짓 퍼드득 ... - 짜식, 바쁜 것도 아니었구만, 내린 곳이래야 기껏 아까 그 물막이 보 위.
착지란 이렇게 10 out of 10, 10점 만점에 10점!
체조선수들이 배워야 할, 완벽한 착지!
얼마나 부드러운 내려앉음인지, 겁많은 오리들 조차도 태연하다.
저 햇살이라니, 날개를 투과한 부드러운 저 빛...
저래서, 쟈들은 날 수가 있는 갑다...
저 보 위에서, 왜가리
운 좋으면 (누치에게는 불행이지만) 투욱~ 튀어오르는 큼직한 누치를 만날 것이다만,
열에 아홉은, 그냥 고달프고 고픈 배로 봄날 짧은 해 지는 쪽의 제 둥지로
털럭털럭 힘없는 나래짓으로 날아 갈 것이고
지금 당장 다리 아프고 목마른 자, 나도 털레털레
사람 사는 곳으로 가서 목도 추기고... 해야 한다. bye~~~!
오후 5시 : 골목길
어떤 길로 해서 갈까... 이왕, 안가본 골목을 듵어서 털레털레 갈 수 있으면...
횡단보도에서, 빨간불에도 당당하게 유유히 지나가는
여드름 자국 흉흉한 녀석의 등짝에 RED SOX 라고 씌어 있네.
빨간 불과, 빨간 등짝의 글씨. 미처 담지 못한 것이 아깝다. red light red sox red socks ...
차로 지나갈 때는 보이지 않던 골목 어귀에 들어섰더니, 어찌 조금 방향착오...?
어디로 가야 빠른 길인지... 그렇다고 왔던 길 될아가기는 좀 시시해...
털레털레 해는 반 뼘도 안남았는데, 바람은 쌔앵~거리고, 자전거 그 꼬마처럼 나도 피곤하다.
저만치, 교회앞에 꼬마들이 무얼 먹고 있네, 가서 길을 물어 봐야지...
???
교회 문앞에서지짐(전)을 부치고 있다, 아줌마 둘.
근처 동네 꼬마들인 듯, 맛있게 먹고 있고.
"아, 예. 저 오른쪽 골목으로 쭈욱 가시면 육교가 나와요.
이거 가지고 가세요. 부활절 달걀이거든요.
시간 있으시면, 잠시 기다렸다가 저 천사님(지짐 부치는 아줌마) 부침개도 드시고요..."
예쁘게 포장된 부활절 계란... 얼마만인가. 고등학교 1? 2학년?
갑자기, 교회에서의 그 얼굴들이 동글동글 둥글둥글 계란같이 떠오른다.
거 참, 털렛길에서 부활절의 계란이라니, 그 추억들이라니.
계란을 주머니에 넣고 만지작거리며 털레털레 걸으니 갑자기 '삶은 계란'을 먹자는 유혹.
용서 하소서, 이 선악과를 깨뜨립니다.
전봇대에 기대서 껍질을 까니, 익숙한 냄새, 익숙한 부드러움...
참, 그 아지매가 소금을 왜 안줬을까...
털레털레 걸으며 우적우적 계란을 볼 미어지게 넘겼다가, 그만
목이 멘다. 내 죄로소이다. mea culpa
목이 메어서, 가슴을 치며 털레털레 걸었다.
어디 수퍼마켓을 찾아야 한다.
가슴 치며 털레털레 걷는 길... 거 참.
'**마트' !
콜라 생각을 하고 들어갔었는데 날씬, 자그마한 병의 생막걸리가 지를 마셔보란다.
계산을 하고, 뚜껑 따서 선자리에서 반 병을 울컹였더니, 이상한 듯 보는 카운터 아가씨.
"하하, 그냥 가슴 칠 일 있어서..." 해주고 나왔다.
낯선 담장길, 낮은 햇살에 목련이 낮잠에서 깨어나 저녁 바람에 흔들린다.
"아저씨, 이 거 좀 땡겨 줘유..."
제 키보다 높이, 리어카에 박스종이 가득 실은 아저씨가 약간 경사진 골목 어귀에서 부른다.
작은 리어카에 엔간히도 많이 실었네...
쉽게 생각하고 한 손으로 당기니까, 아쭈 꿈쩍도 않아요.
카메라 내려놓고, 두 손으로 용을 용을 써서 간신히 끌어내는데, 묶었던 고무줄이 끊어지고
절반 정도 짐들이 뒤로(골목안으로) 쏟아져버렸다. 에구... 난감.
"고마워유, 저건 다시 담아 묶어야지유..."
"아따, 꽤나 무겁네요. 몇 킬로나 되요?"
"한 200키로 될라나요, 일주일 모둔(모은) 건 데...?"
"그럼 얼마 받아요?"
"뭐, 한 만원 쬐끔 넘겠쥬...
털레털레 걷는다..
일주일에 만원... ...
저어만치 아는 길목이 보이네. ... 털레털레 털레털레...
'이사람은 (옆지기) 내일 올 것이고... 막걸리 먹었으니 저녁 생각은 별로일 것이고...
심심해 질 것이다, 다시... 아, 나는 심심하다...'
오후 6시, 열쇠를 꽂았다.
썬크림을 씻어내고, 양말을 뭉쳐 세탁물 통에 던져 넣고 (골 인!),
4월 11일에 목을 매고서, 도의를, 양심을 버린 쟈들은 토요일 오후 내내, 또 무슨 헛소리들을 했을까, TV를 켠다.
심심하다.
일요일 오전 9시 50분, 전화가 왔다.
별 일 없으면, 오후 1시에 기원으로...
10시, 전화가 왔다. 오후 5시쯤 대전 도착 한다는 옆지기.
"알써, 택시타고 와. 나는 기원에 가거등..."
"간 크네, 이남자..."
"선착순이야, ㅎㅎㅎ. 당신이 10분만 빨리 전화 했어도 차 가지고 나갔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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