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 그 여운/블랙커피

은행열매의 냄새를 못느낀 것은...

가을길 2011. 10. 12. 15:55

 

 

 

유등천변 가로수

 

 

그저께, 전에 살던 동네 '잔치'에 갔었는데, 식사 후

오랫만에 찾은 언덕배기를 옆지기와 어슬렁거리는데,

호박색 껍질 (냄새는 무척 불쾌한)째 풀밭에 떼구르르 떨어져 있는 은행열매!

행여, 밟으면 신발에 묻은 그 냄새가 차안에 배일까 조오심 조오심 하는데
"이거 주워갑시더..."
"머라카노, 이 냄새나는 거를. 좀 있으면 깐 것도 많이 나오니까
 그거 사다가 구우면 되지 뭐..."
"그기 아이고, 이대로 술 담가서 먹으면 기관지에 좋다카던데..."
"마 차아라, 냄새나구로..."
"내 약 하구로..."

아차! 
햇살이 너무 눈부셔선지 아찔, 철렁하는 마음.

아, 내가 이렇구나, 이렇게 무심했구나...

미안한 마음에, 얼른 동네로 내려가서 비닐봉지 하고 일회용 장갑 얻어와서는
둘이서 깨끗한 것으로 골라서, 반 되쯤 주워 담았다.
냄새? 늘 꺼려지던 그 냄새가 미안한 마음에서였던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 무슨 이윤지, 옆지기는 겨울철에 가끔씩, 컹컹대는 듯 괴롭게 기침을 한다, 자주는 아니지만.
3~4년전, CT촬영검사를 했더니, 오른쪽 폐기능이 많이 안좋다는 - 아마도 어릴적에 그랬을 거라는- 결과.

병원에서는, '당장에 치료하고... 그래야 할 뭣은 없지만, 하여간에 안좋다' 고...
그 뒤, 얼마동안은 서로 은근히 걱정, 걱정 하다가
언제부턴가 잊어버렸었다, 나는.

 

 

휴일 이른 아침, 혼자 슬그머니 나와서 쉼터에 있는 은행나무들 댕기면서
쪼그르르 예쁘고 향긋한 열매, 제법 한 봉지 가득 줍고,
마트에 들러서 담금주 2병 (4되) 사가지고 와서 
어제 줏어 온 것들이랑 함께 작은 항아리에 가득 담궜다.
"아이구, 착하네..." 좋아라 웃는 옆지기, 
하지만, 어제 겸연쩍었던 내마음이 영 개운치 않다.

 

오전 내내 대청소, 창고정리 한다고 들락거리다가
점심때 지나서야 소파에 누워, 가늘게 코를 골며 자는 저 얼굴이
왜 그렇게 피곤해보일까...

얼른 얼른 잘 익어라, 냄새 하나도 안나는 은행알들아!  - 2011/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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