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 그 여운/블랙커피

세월은 염색이 안된다

가을길 2011. 10. 14. 19:03

 

스산한 강가, 어지러히 흩어져 있는 깃털

비는 내리고,

어느 왜가리의 꿈은 더이상 날지 못하겠다, 이렇게 젖어...

 

 

 

 

벚나무 이파리, 어떤 녀석은 가을햇살에 단풍보다 븕다.
그런 가을 낮,

옆지기와 딸내미가 거실에다 염색공사판을 펼쳤다, 세월을 감추기 위한 서글픈 작업.
미용실 가서 하면 비싸기도 하고 맘에 드는 색을 고르기도 쉽지 않아서
홈쇼핑에다 주문해서 집에서 한다는데, 미용사 노릇은 당연히 딸내미의 몫.
둘은 도란도란 거리며 염색업을 하는데, 멀거니 앉은 내가 서글퍼짐은...

미인의 머리(카락)을 두고, '흑단' 같은 머리채 라고 했던가 ? - 동양에서는
30년전, 그 여자의 머리 색깔은 정말 기막히게 좋았다.
'흑단' 아니고, 너무 옅지도 않은 밤색 ? 하여간 뭐라고 적절하게 표현이 안되는,
동,서양의 색이 아주 적절하게 배합된 그런 색깔의 머리가 어깨까지 찰랑거렸던 눈부셨던 날들 !

염색을 시작한 후로, 그 색깔을 다시는 볼 수 없다.
원래의 머리색깔대로 염색을 하면, 나이들어 생긴 흰머리가 진하게 염색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냥 검정색을 써야 한단다.
변해버린 색깔도 그렇지만, 어쩌다 그 머리칼을 만져 보면 좀 거칠어진 듯한 느낌에 맘이 불편하다.

"당신, 몇 년전만 해도, 봐 줌직 했는데, 이젠 할매틱 하다야..."
"이기 다 누구 때문에 그렇는데, 30년을 쪼그라졌으니 그렇지... 물리도."
"장모님한테 '리콜' 요청해야겠다, 참,  사람도 리콜 해 주는 그런 것 없나."
" 내가 하고 싶은 소리다, 치 ~~"
"엄마, 아빠, 그건 제가 하고 싶은 말이예요......" - 딸내미 !
"음, 인정한다. 니는, 첫 작품이라서 예술성을 고려할 수 없었거든..."

 

매실 이파리, 벚나무 이파리들 그냥 지나가는 바람에도 날리운다.
쟈들, 다 떨어지면 또 한 해 가는 건가......
'커피' 서빙을 하면서 모녀를 보고 앉아있다.


세월은 염색이 안되는거야. 이미 가버렸으니까.
세월 뒤에 남은 우리만 겉치레 하는 거지...

아니, 세월은 제자리에 있는데, 우리네가 지나가고 있는 것 아닌가?
세월은 늙지 않는데, 우리만 늙는 것 아닌가 ?

 

음악 : ein traum (꿈) - 모니카 마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