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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잘 찍으려면 우선 사진을 '말'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진을 그림의 한 종류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것은 잘못일 뿐 아니라, 그림이라고 생각하면 일반인들은 잘 그리지 못하니까 접근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말이라고 생각하면 사진을 못 찍을 사람은 없다. 잘 하든 못 하든, 말을 못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작가든 아니든 사진은 결국 무엇인가 하고 싶은 말 대신 찍는 것이다. 그것이 위대한 철학적 내용이든 평범한 생활 이야기이든,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찍는 것, 이것이 사진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만이 말이 아닌 것이다 (사진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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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소위 작품 사진으로 찍은 이 사진도 미국 소도시 카멜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말'이다. 199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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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기념사진은 사진으로 쓴 그 날의 '일기' 이다. 197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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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중요한 것은 사진이 어째서 말이냐를 따지는 것보다, 사진을 말로 생각하고 찍으면 잘 찍힌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무엇인가 하고 싶은 말을 하듯 그렇게 찍으면 사진이 된다는 뜻이다. 다만 어떻게 해야 잘 찍느냐가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에는 크게 신경 쓸 것이 없다. 이 세상에는 말을 잘 하는 사람도 있고 잘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말을 잘 한다고 해서 잘난 사람도 아니요, 말을 못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나 그 말이 못난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매끄러운 말에 진실성이 옅어 보이고, 어눌한 말에 정감과 함께 믿음이 더 감을 여러 번 겪어 보았을 것이다.
사진을 아직도 '기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러나 사진은 '기술'의 울타리를 벗어난 지 이미 오래 되었다. 시중에는 노출은 물론이요, 초점까지도 자동으로 맞춰 주는 자동 카메라가 많이 나와 있다. 노출과 초점 맞추기 이외에 다른 기술이 무엇이 또 있을까? 구도? 구도는 기술이 아니다. 그래도 아마 이게 제일 중요하고도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구도'라고 하는 것은 좋은 사진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 좋은 사진에 별 쓸모가 없는 것이 구도라는 것이다. 보다 직설적으로 말해서, 구도를 알면 알수록 사진은 못 찍는다. 무슨 소리냐고? 구도라는 것은 사진의 외형을 다듬는 작업이라고 할 수가 있다. 하지만 외형이 좋아야 좋은 사진일까? 내용도 없이 외형만 갖추어진 사진은 빈 머리에 화장만 그럴 듯하게 한 여인처럼 매력이 없다. 옷 입은 모양은 촌스러워도 사람됨이 진지할 때 호감을 주듯, 구도가 잘 안 맞아도 볼 만한 내용이 담기면 그게 더 좋은 사진이다 (사진3). 그래도 이왕이면 외형도 잘 갖추어진 것이 더 좋지 않겠는가 하는 의문이 들 것이다.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것은 사진을 오래 하는 동안 저절로 습득이 되는 것이지, 이것부터 배우려 들면 오히려 사진 내용으로 접근해 들어가기가 어렵다. 마치 영어를 배울 때 문법만 열심히 배우다가는 실제 미국 사람과 만나서 말 한 마디 못하게 되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말을 배우려면 우선 되든 안 되든 자꾸 떠들어야 한다. 그래야 입이 떨어진다. 문법은 그 다음이다. 그리고 문법부터 배우면 말은 오히려 더 못한다. 이것이 과거 우리 나라의 영어 교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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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이면 처음부터 완벽한 말을 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는가' 라고 그래도 우긴다면 그것은 내 소관 사항이 아니다. 걸음마도 모르면서 뛰어야겠다는 사람을 말릴 재주는 없으니까. 따라서 카메라가 좋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전문가가 되려면 자연히 좋은 카메라도 필요해진다. 그러나 그것은 전문가가 되어서의 일이고, 우선은 시중에 흔한 자동 카메라가 제일 좋은 카메라임을 알아야 한다. 노출에 신경 쓸 필요 없고, 초점에도 신경 쓸 것 없이 대상으로 직접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동 카메라가 초보자용이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값싼 자동 카메라로도 마음만 먹으면 소위 '작품 사진'을 얼마든지 찍을 수 있다 (사진4). 한마디로 카메라는 도구이다. 사진을 말이라고 하면 카메라는 필기 도구, 즉 볼펜이 된다. 그렇다면 어떤 볼펜으로 써야 글이 잘 써질까? 왜 자동 카메라가 좋은 카메라인지 여기까지 읽었으면 자연히 알게 되리라 믿는다. 한번 생각해 보자. 우리의 위대한 시인들은 어떤 볼펜으로 시를 써서 그렇게 좋은 시를 썼을까 하고…. 사진은 카메라가 찍어 주는 것이 아니다. 카메라 속에 작품이 들어 있어서 그것을 우리가 빼어 쓰는 것이 아님은 누구나 알 것이다.
한 가지 남은 문제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보다 나은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역시 쉽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사진이 말이라고 했으니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말하듯이 사진을 찍으면 된다.또한 하고 싶은 말이 없을 때에는 말을 하지 않듯, 사진을 찍지 않으면 된다. 무엇을 찍을 것인가 하는 것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에 달려 있다. 즉, 꽃이 예뻐 감탄이 나오면 그 때 찍으면 된다. 아기가 귀여워 볼에 입을 맞추고 싶을 때 그 때 찍으면 된다. 그러면 사진이 곧 꽃이 예쁘 다는 말이 되는 것이요, 아기가 귀여워 못참겠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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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되는 것이다. 실제가 그렇다. 그냥 '아기 한번 찍어 보자'하는 마음으로는 평범한 사진밖에 나오지 않는다. 바라보고 있다가 내 눈에 귀엽게 보일 때 그 때 찍어 보라. '아이고 예뻐!' 하는 감탄이 나올 때 찍으면 틀림없이 '아이고 예뻐' 하는 소리가 그 사진에서 들려온다. 이것은 기술이 아니라 느낌이 느낌으로 살아나는 것으로, 이런 느낌은 작가라야 느낄 수 있는 특수한 경지가 결코 아니지 않은가? 핀트가 조금 덜 맞아도, 설사 노출이 조금 부족해도 귀여운 아기 모습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다. 귀여워 보일 때 찍으면 자연적으로 귀엽게 나온다 (사진5).기술은 관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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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약력 한정식/중앙대학교 사진학과 교수 서울사범대학교 국어과 졸업 일본대학 예술학부 예술연구소 수료(사진전공) 개인전 6회외 단체전 다수 저서: 사진의 예술(열화당) 사진, 시간의 풍경(열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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