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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가장 커다란 특성은 현실성이다. 즉 현실을 바탕으로, 현실을 재현해내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사진이다. 그것이 예술이건 기록이건 다르지가 않다. 사진의 예술성은 기록성을 벗어난 곳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그것도 소위 사진작가라는 사람들 중에도 제법 있는데, 이것은 사진에 대한 아주 잘못된 인식 중 하나이다. 사진에는 있는 것만 찍히지 없는 것, 보이지 않는 것은 찍히지 않는다. 따라서, 사진에 찍혀 나왔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있거나, 있었던 것이라는 뜻이 된다. 이것이 사진의 가장 큰 특성으로, 사진의 현실성이라고 하는데, 이를 달리 사진의 기록성이라 부르기도 한다. 요즈음, 소위 '만드는 사진'이라고 해서, 기계적으로 찍지 않고 그 위에 손질을 가하는 사진들이 가끔 보이는데, 그 손질을 통해 사진의 표현 영역을 넓힌다는 의미는 있을지 몰라도 그렇게 되면 사진이 사진이라기보다는 회화, 즉 그림의 하나로 되기 쉽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진 1).
사진을 찍지 않고 만들게 되면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인간의 의지가 개입하게 된다. 따라서 인간의 의지에 의해 조작된 기록을 놓고 순수 기록적 가치를 논하기가 어렵다. 사진의 소중한 가치인 기록성이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이 기록성이 사진의 가장 큰 가치로 인정받는 것은, 기록에 관한 한 다른 어느 매체도 따라올 수 없는 사진만이 가진 가치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는 사람이 가장 지혜로운 존재이지만, 그 지혜가 오히려 본질을 해치는 경우가 있는데, 위와 같은 경우가 그 일례일 것이다. 지능도 없는 바보 기계가 사물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반사적으로 찍어야만 가치가 생기지, 인간의 지혜가 개입하면 사진의 기록적 가치는 떨어지고 만다. 이미 다가온 일이지만 디지털 사진이 점차 보편화되고 있는데, 디지털 사진처럼 편리한 사진술도 없지만 기록성이라는 면에서 지금까지의 정설, '사진은 사실'이라는 사실이 이제는 더 이상 사실이 아니게 되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가장 지혜로운 인간이 지혜를 발휘할수록 가치를 잃는 이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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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잘 모르는 사람들의 생각 중에서 또 한 가지 잘못은 '찰칵'하고 사진을 찍는 것이 무슨 예술이냐 하는 것이다. 그림 그리는 사람의 그 오랜 수고와 많은 땀에 비할 때, 사진가들은 어처구니 없게도 눈 깜박하는 순간보다 더 짧은 순간에 모든 예술활동을 끝낸다. 빨리 끝내는 것을 화가들이 질투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적 영상은 결국 우연에 기댈 도리밖에 없는데, 그런 우연에 의한 행운이 어찌 예술일 수 있으며, 그런 행운아가 어찌 예술가일 수 있겠는가 하는, 어찌 보면 당연한 반발인 것이다. 맞는 말이다. 사진에는 우연이라는 행운도 따라야 한다. 그렇다면 우연도 예술이라는 말일까? 솔직히 우연 자체가 예술일 수는 없다. 우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예술은 있을 수 있지만…. 그 우연을 소중하게 다루는 예술이 바로 사진이다. 그 우연은 일단 작가의 계산에 따라 잡히는 것이 대부분이고, 그리하여 우수한 작가일수록 그런 우연을 잡을 기회가 많은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때 그 현장에 마침 사진가가 카메라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정말 우연이 아닐 수 없다 (사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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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의 삶 자체가 우연 아닌 것이 없다는 점은 생각해 보았는지 모르겠다. 애초에 우리가 태어난 것부터가 우연이었다. 살아가는 동안에 만나는 온갖 사물이 우연 아닌 것이 또 없다. 이 우연을 우연으로 영상화하는 사진은 그래서 가장 현실적인 예술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물론 그런 의미에서 현실성을 사진의 가장 큰 특성이라 한 것은 아니지만. 카메라의 메커니즘부터가 우선 그렇다. 일반적으로 사진의 셔터 속도는 1/125초 아니면 1/250초가 보통이다. 그런데 이 세상 어느 누가 1/125초를 감지할 수 있을까. 더구나 1/250초나 1/1000초쯤 되면 그 상상조차 가지 않는 속도에 어지럼증만 일어날 것이다. 그래서 때로 눈을 감은 사진도 나오고, 생각지도 않았던 표정이 찍히는 것이다. 이는 분명 실패작이지만, 그런 실패조차도 우리의 눈을 신선하게 해 주고 때로는 웃겨 준다. 사진이 아니고서는 겪을 수 없는 독특한 '경지'인 것이다. 이 우연성은 사진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예술 분야에도 있다. 그리고 그 우연한 결과를 소중하게 여기기도 한다. 도자기에서의 '요변(도자기를 구울 때 바람이나 불길 등의 영향으로 도자기가 변색하거나 모양이 일그러지는 현상)'이 그 대표적 예이다. 사진의 우연성은 사진 메커니즘속에 있는 것이라 근본적으로 피할 수도 없지만, 반대로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도 있어야 한다. 삶 자체가 우연으로 뒤덮여 있기에도 그렇고, 또 그 우연이 만들어 주는 세계는 실제 생활 가운데에서 겪을 수 없는 기묘한 세계, 새로운 경지를 펼쳐 주어 우리의 시각적 경험을 풍부하게 만들어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진3).
한 가지 덧붙일 것이 있다. 사진의 기록성을 예술성의 대조적 성격으로, 적어도 서로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때로 있는데, 어휘상으로 볼 때 그러한 면이 없지는 않지만, 사진은 이 기록성을 바탕으로 그 예술적 성과를 얻을 때 가장 빛이 난다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이름 난 많은 소설들이 우리의 삶을 감동적으로 다루었듯, 사진도 역시 그 기록성을 통해 우리의 삶을 가장 감동적으로 다루어 왔다. 사진 역사에 남은 위대한 작가와 작품은 거의가 인간 생활을 다룬 작가요, 작품임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사진의 기록성은 단점이거나 수치가 아니라, 장점이요 자랑임을 알아야 한다. 이 기록을 바탕으로 한 사진은, 그 사진이 설사 지금 보아 별 의미가 없고 가치가 없어 보여도 시간이 흘러 세월이 흐르면 그 세월과 함께 저절로 높은 가치가 생긴다. 세월이 가면 갈수록 가치가 높아지고 의미가 깊어지는 것, 이것이 사진이요 사진의 기록성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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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약력 한정식/중앙대학교 사진학과 교수 서울사범대학교 국어과 졸업 일본대학 예술학부 예술연구소 수료(사진전공) 개인전 6회외 단체전 다수 저서: 사진의 예술(열화당) 사진, 시간의 풍경(열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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