學而時習之/사진 잘 찍어보기

인물사진 촬영의 실제 2

가을길 2011. 8. 2. 19:57





1. 대상을 이해해야 한다

훌륭한 사진가가 되려면 사진 전공분야에 대한 기술적인 지식은 물론 사진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와 사회에 대해, 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의 한 시점을 잘 이해하여야 한다. 물론 이런 역사 인식은 비단 사진가만 아니라 모든 예술가, 심지어는 정치를 하는 사람들에게도 꼭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좋은 인물 사진가는 대상을 잘 이해해야 되고, 만약에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촬영하기 직전까지라도 최선을 다해 대상을 공부해야 된다. 그러자면 평소에 교양쌓기에 게으름을 부려서는 안 된다. 인물 사진가는 언제 어디서 어떤 사람을 찍을지 모르기 때문에, 여러 방면의 문화활동에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 한다 .
최근의 인물 사진가들은 점점 전문화되어 가고 있는 추세다. 많은 대중들이 관심을 보이는 연예인을 전문적으로 촬영하는 사진가로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자신이 연예인이 되던지,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무리 속에서 생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
최근 텔레비전에서 인상 깊은 장면을 보았다. 한 중견 연기자가 무속인으로 열연을 하다가 결국 무속인이 되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을 두고 그 연기자의 타고난 팔자가 무속인이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이 연기자가 더 좋은 연기를 하려고 노력하다보니 무속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는 것도 설득력이 있을 듯싶다. 잠시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번졌는데, 필자가 인물사진을 찍으면서 얻은 경험에서 중요한 교훈도 인물의 분위기를 잘 연출하려면 어떻게 해서든 대상의 세계 속으로 몰입해서 자연스러움을 연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2. 최고의 연출은 자연스러움

자연스러운 연출에 이르려면 대상의 습관이나 그 사람이 처한 환경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출판저널>이라는 잡지의 표지를 맡아서 촬영을 한 적이 있었다. 표지 인물이 혜산 박
두진 선생이었다. 나는 평소 그분의 시를 좋아하고 있던 터라 내심 기뻐하며 그분 작품을 다시 읽어봄은 물론이요 그분의 취미인 수석에 관해서도 공부를 해서 신촌 창천동 댁으로 아침 열 시에 갔다. 나는 조그마한 탁상용 수석만으로 상상했는데, 아담한 정원에는 해남 보길도에 있는 고산 윤선도의 부용정에 있는 수석보다는 작지만, 근육질의 남성미가 넘치고, 선생의 시에서 종종 느낄 수 있는 강인한 의지를 보여주는 듯한 수석들이 즐비하였다. 그래서 촬영을 정원에서 하기로 했다. 나는 선생에게 평소의 휴식 습관을 물었더니, 수석에 가끔 물을 주면서 마른 수석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며 즐긴다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수석에 물을 뿌리고 수석 사이에 앉게 하여 촬영하였다. 배경을 조금 단순하게 하기 위하여 노출을 앞쪽 인물과 배경에만 맞추고 담쪽에는 어둡게 떨어뜨렸다. 그랬더니 선생의 모습과 뒤쪽의 번들거리는 수석만이 강조되는 사진이 되었다(사진1).  
 
(사진1)
혜산 박두진

한번은 예전에 지휘자 임헌정 씨 (부천 필하모니 )를 촬영할 기회가 있었다. 도무지 어떻게 연출을 해야 할 지 아이디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무슨 음악을 좋아하는지 물어, 마침 좋아하는 음악이 내 스튜디오에 있기에 실례가 되지만 그 음악에 맞추어 지휘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그분의 지휘를 감상하면서 다시 아이디어를 찾으려고 노력했는데, 재미있는 점은 그분의 눈과 손의 동작이 지휘를 하면서 점점 더 기를 발산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한 악장이 끝나고 다시 한번 지휘하는 모습을 부탁 드려서 촬영을 했다(사진2).
어떤 전문인을 촬영할 때 개성 파악이나 연출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면 나는 단순히 사진을 위한 포즈가 아니라 실제로 하는 일을 해달라고 부탁을 하곤 한다. 화가에게는 실제로 그림 그리는데 몰입하게 하고 , 무용가에게는 무용동작에 빠져들게 한다. 그렇게 그 일을 실제로 반복하다 보면 찍히는 사람 자신은 눈빛이 빛난다든지 기가 생기고, 사진가에게는 대상의 습관이나 자세를 관찰할 좋은 기회가 생긴다.
 
 
(사진2)
지휘자 임헌정
3. 촬영 당일 주의할 점
이전 회에서 말한 것처럼 중요한 인물 사진 촬영은 보통 10-11시 사이로 정한다. 그래서 촬영하기 전날은 대부분 대상의 성격과 취미 그리고 인물 형태에 대한 조명등을 구상해 놓는다.

당일 아침에는 식사량을 평소보다 반으로 줄인다. 이유는 포식을 하게 되면 피가 위로 몰려서 몸이 둔해지고 무엇보다도 뇌의 회전이 느려지기 때문이다. 중요한 사람을 촬영할 때 할애되는 시간이 경우에 따라서는 30분을 넘지 못하는 때도 있다. 그 30분 동안에 인사하고, 장소 선택하고, 조명장치하고, 연출하기란 정말 한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긴박한 상황이 펼쳐진다. 그 와중에 사진가는 속으로 대단한 긴장을 하면서도 상대방에게는 편안한 표정을 지어야 좋은 사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어령 씨가 초대 문화부장관으로 취임하여, 잡지의 표지사진을 찍으러 세종로에 있는 장관실로 간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상황은 이 장관이 갓 장관에 취임하여 언론의 집중 인터뷰세례를 받고 있던 터라 비서가 허락한 인터뷰 시간은 촬영 시간까지 모두 다해서 30분이었다. 이럴 경우 나는 대부분 글쓰는 기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먼저 촬영하자고 부탁한다. 왜냐하면 인터뷰는 하다가 다 못하면 전화로도 할 수 있지만, 사진은 그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 인터뷰 후에 사진 찍기는 왠지 찍히는 사람이나 찍는 사람이나 김이 빠지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이어령 씨가 이화여대 석좌교수로서 고별강연을 하는 것을 보았다. 지금의 그 모습도 젊은이 같은 활력이 있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로 젊은 청년 같은 모습에 울림이 있는 우렁찬 목소리로 우리를 맞아 주었다던 기억이 난다. 이 장관은 어떤 자세를 취하면 좋겠느냐고 묻기도 하고, 비서를 불러 집기를 옮기는데 좀 도와주라고도 지시하였다. 나는 문인 출신의 이 장관이기에 서재를 배경으로 앉도록 자세를 잡아주고 사진을 찍는데, 아무래도 자연스러운 장면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같이 간 글쓰는 기자에게 질문을 하게 해서 답변을 하시는 장면을 촬영해서 만족스런 모습을 담아낼 수 있었다(사진3). 그때 찍은 그 사진은 출판된 후 장관실에서 특별히 필름 한 장을 복사 해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다.
 
 
(사진3)
이화여대 석좌 교수 이어령

 

출처 : 임영균/중앙대학교 사진학과 교수
         http://www.phoins.com/data/sajin3_4.a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