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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을 찍을 것인가를 먼저 정하는 것이다. 사실은 초보자와 아마추어 작가들의 가장 큰 고민도 이것이다. 무엇을 찍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정처 없이 길거리를 헤매기도 하고, 소풍을 겸해 산이나 들로 나가 눈에 띄는 풀이나 꽃에 렌즈를 대어 보지만 잘 찍히지 않는다. 생각대로 사진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또 고민인 것이다.
무엇을 찍어야 하는가. 제1회 강좌에서 사진을 ‘말’이라 했다. 무엇을 찍을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무슨 말을 할까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하고 싶은 말, 해야 할 말을 먼저 찾아내라. 그렇다고 해서, 무슨 대단한 말을 생각해 내라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우리 아가가 예쁘구나’라든가, ‘오늘 날씨가 무척 덥네’라든가 하는 그런 것에서부터 시작해 보라.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런 느낌을 먼저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느낌을 얻고자 하면 주변부터 둘러볼 것을 권한다. 생활해 가는 동안 느낀 것이 있으면 그 느낌을 찍자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을 찍을 것인가에 대한 답이다. 아가가 예쁘다면 그 예쁜 모습을, 가능하면 그런 표정이나 행동을 찍으면 된다. 오늘 날씨가 덥다는 것을 나타내려면 더위에 허덕이는 사람이나 가축, 또는 식물 등을 찾아 찍으면 된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사진 1).
이런 것이 익숙해지면 그 다음 점차 깊은 의미의 말을 할 수 있게 된다.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란 옛말이 있다. 이 말은 천리 길을 단숨에 갈 수는 없다는 뜻이다. 옛말 그른 것 없다고 했던가. 천리 길을 다 가려면 힘이 드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만한 각오가 없으면 갈 수도 없다. 좋은 사진을 찍으려면 그런 연습 과정 없이는 되지 않는다. 시간도 걸리고, 힘도 들고, 돈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 세상에 공짜란 없다. 노력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 있겠는가. 이런 과정을 거친 후에야 예술적인, 거창한 주제로 씨름할 수 있다. 같은 이유에서 기념 사진을 소홀히 하지 말 것을 권한다. 때로 작품을 한다는 사람들이 기념 사진을 우습게 여기는 것을 보는데, 기념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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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
예쁜 아가의 표정이나 행동이 뭐 별다른 것이 아니다. 카메라를 곁에 두고 그런 모습이 보일 때 찍으면 이런 귀여운 모습은 언제나 찍을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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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제대로 찍을 줄 모르는 사람이 예술은 할 수 있을까. 그뿐 아니라 기념 사진이야말로 사진의 제일 근원적인 사진으로, 시시한 ‘작품 사진’보다 가치도 있고 볼 맛도 있고 뜻도 있는 사진이다. 소위 ‘작품 사진’은 후에 남이 볼까 부끄러워 찢어 버리기도 하지만, 졸업식은 그만두고 하다못해 등산을 가서 찍은 기념 사진은 찢고 싶어도 찢어지지가 않는다. 남이 볼까봐 부끄러운 일도 생기지 않는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소중해지기도 한다. 기념 사진은 작품 사진이 아닌 줄로 아는 사람이 퍽 많다. 그러나 ‘작품 사진’이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지만, 평생을 두고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을 아름다운 기념 사진이 있다면 그게 작품이 아니고 무엇일까. 하여간 작품이나 예술이라는 것이 저 멀리 있는 어떤 꿈 같은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파랑새가 어디 먼 숲 속에 혼자 살고 있던가(사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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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
이 기념 사진이 소위 작품 사진과 어떤 차이가 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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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자신이 초보의 경지를 조금 벗어 났다고 생각한다면 한 가지만 더 유의해 주기 바란다. 사진은 말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무슨 말을 해야 사람들이 열심히 들어 줄까, 어떤 말이 들을 만한 말일까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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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 훌륭해야 하겠고 감동적이라야 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처음 듣는 말, 들어서 새로이 깨달을 수 있는 말이라면 더 좋지 않을까. 주례사를 가끔 들어 보았겠지만, 첫째 어떻고 둘째 어떻고 늘어 놓는 그 훌륭한 말들이 신혼부부들에게 얼마나 감동적으로 들려 생활의 지침이 될까, 여러분 스스로의 경험을 미루어 짐작해 보라. 아무리 훌륭한 말이라도 들은 말 또 듣고, 한 말 또 하면 듣는 사람, 하는 사람 다 괴로운 법이다. 마찬가지로, 천진난만한 어린이 표정 찍고, 이 빠진 할아버지 찍어, 제목도 눈에 익고 귀에 못이 박힌 ‘천진난만’, ‘연륜’,‘세월’로 단다면, 보는 이는 얼마나 식상하겠는가. 이런 사진은 이제 그만 찍었으면 한다. 그러면 새로운 말이란 어떤 것일까. 이는 각자의 감성, 취향, 능력에 딸린 문제이니까 한정 지어 말할 수는 없지만, 이를테면 남들이 모두 천진난만하게 보는 어린이의 모습에서 어린이답지 못한 간사함을 느꼈다든지, 잎이 다 떨어진 겨울 나무에서 오히려 건강한 생명감을 느꼈다든지 하는 등등 흔하지 않은 생각이나 느낌을 나타내는 말 같은 것이 아마 그런 말이 되지 않을까 모르겠다. 요컨대 누구나 다 아는 말, 늘 듣던 말을 다시 하는 일은 하지 말자는 것이다. 따라서, 아이들을 찍고 노인들을 찍어도 상식적으로 다 알고 있는 그런 상황은 굳이 찍을 필요가 없다는 얘기인 것이다(사진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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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 |
소년 소녀가 귀여워도 항상 천사표 어린이로 찍으면 재미가 없다. 이 소녀는 이제 겨우 일여덟이나 되었을까한데 어딘지 모르게 성숙한 여인의 냄새를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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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일본의 한 사진가는 그들의 국화라고 사랑하는 벚꽃을 회색 톤의 거친 입자로 찍어 발표한 적이 있다. 여러 가지 뜻이 담겨 있겠지만, 아주 쉽게 말해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봄이 왔건만 봄 같지가 않다)’을 말한건 아닐까? 이것이 창의성으로, 이 같은 창의성이야말로 사진을 예술로 승화시켜 주는 것이지 얄팍한 기술은 아닌 것이다. 그리고 필자는 이러한 창의성은 타고 난 감수성도 중요하지만, 훈련과 연습을 통해 얻어진다고 믿고 있다. 노출! 노출은 크게 신경 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요즈음 카메라치고 노출계가 장착되지 않은 카메라는 거의 없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이 노출계가 가리키는 대로 따르면 된다. 그런데 노출계가 가리키는 노출치가 항상 적당한 노출은 아니다. 노출계는 항상 적정노출이 되게 설계되어 있는 탓으로 모든 물체를 중간조로, 말하자면 밝고 어두운 것 모두 알맞은 밝기로 표시한다. 같은 화면 안에서는 구별이 되지만, 각각 다른 컷에 담으면 같은 색조로 나오게 설계되어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밝거나 어두운 물체를 찍을 때에는 노출치 보정을 해야 한다. 카메라에 붙은 설명서에 다 씌어 있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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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 그것을 잘 읽고 두어 번 연습해 보면 될 것이다. 주의해야 할 것은 적정노출이라는 것을 너무 믿지 말라는 것이다. 적정이라는 판단은 그 상황과 작가의 취향에 따라 달라 진다. 약간 어두운 톤을 좋아하는 사람은 약간 어두운 것 |
(사진4) |
적정노출로 찍었더라면 이보다 훨씬 밝게 묘사되어 토큐호텔의 네온사인도 잘 안 보이고, 분위기도 불길한 느낌을 주는 어두움이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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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기의 적정 노출이고, 눈처럼 흰 피사체는 밝게 찍히는 것이 적정 노출이다. 기계는 보통 사람들의 일반적인 경우에 맞춰 늘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그 기계를 자기 개성이나 상황에 맞추는 연습이 필요할 것이다(사진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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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약력 한정식/중앙대학교 사진학과 교수 서울사범대학교 국어과 졸업 일본대학 예술학부 예술연구소 수료(사진전공) 개인전 6회외 단체전 다수 저서: 사진의 예술(열화당) 사진, 시간의 풍경(열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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